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사회 지도자들의 도덕적 책임과 의무라는 뜻이 담겨 있는 말이다. 이 말의 유래는 영국과 프랑스간의 100년 전쟁에서 유래되었다. 이 전쟁에서 영국과 가장 가까운 프랑스의 항구도시 칼레는 영국군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프랑스 칼레 사람들은 시민군을 조직해 용감히 싸웠지만 전쟁이 길어지자 식량이 고갈되어 끝내 항복하고 말았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파격적인 항복 조건을 내걸었다. “칼레의 시민들이여, 우리 영국군이 드디어 너희를 점령했다. 너희는 이제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시민들 중 6명을 뽑아 와라. 칼레 시민 전체를 대신해 처형하겠다. 우리 영국에 반항했던 대가를 너희들 중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 6명이 자원하여 스스로 처형을 받는다면! 칼레 시민들은 안전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명령을 영국장군에게 하달하였고 칼레시민에게 공포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그 6명이 순식간에 채워졌다. 강요도 아니요 힘이 없고나 가진 것이 없는 약자가 아니라, 칼레시민의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죄수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교수대로 나왔다.먼저 칼레의 갑부는 영국장군에게 “나는 칼레 시민인 ‘생 피에르’라고 합니다. 나는 칼레에서 가장 큰 부자로, 그 동안 영국군에 대항하는 군자금을 댔소. 그러니 내게 가장 큰 책임이 있소. 내가 그 죄를 받을 터이니, 약속대로 칼레 시민들은 살려주시오!” 두 번째 사람은 칼레시장이 나섰다. “나는 칼레의 시장이요. 부자가 책임이 있다면 가장 큰 원죄는 나요. 나를 죽이고 우리 시민들은 살려주시오” 세 번째는 법률가였다. “아니오, 내가 가장 큰 책임이 있소. 내가 영국과 전쟁하는 법률을 제정했기 때문이오. 나를 죽이시오.” 그들뿐이 아니었다. 칼레의 다른 상인과 대지주, 귀족 등이 스스로 처형될 것을 자청했다. 당황한 영국장군은 그 사실을 다시 영국 왕에게 보고했고 왕은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오랫동안 우리에게 저항했던 칼레 시민들의 힘이었구나! 시민들을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지도자들은 마땅히 본받아야 한다. 칼레의 그 지도자들을 모두 살려주고, 그들의 영광스런 행위를 기록해 후대에 알리도록 하라!” 그렇게 칼레 지도자들의 이야기는 역사가들에 의해 기록되었고, 이후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책임과 의무를 지칭할 때 ‘노블리스 오블리제’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원래 노블레스는 ‘닭의 벼슬’을 의미하고 오블리제는 ‘달걀의 노른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즉, 닭의 사명이 머리에 있는 벼슬을 자랑함에 있지 않고 알을 낳는데 있음을 가리킨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고 도리어 섬기고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기 위함이다”라고 가르쳤고 인자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삶으로 증명하였다. 이런 기독교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서양에서는 이러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통이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위공직자들이 모든 일에 모범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 생각하는 것이다. 한 예로 미국 국무장관 존 캐리는 베트남전에서 직접 전투했으며 그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영국왕실의 해리 윈저 왕자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어 직접 아파치 헬기를 몰며 대테러 임무를 수행한 일화가 있지만, 우리문화는 이러한 지도자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고위공직자들 중에 군 미필자가 많고, 부정과 불법을 저질러도 용납되고 특혜를 받는 것이 권력의 상징인 것처럼 되었기에 사회적 지도자들을 볼 때 부정적 시각이 많았지만, 이제 우리 사회도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이루어야 한다는 열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35일간 전국의 뉴스를 블랙홀로 만들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가 그것이다. 사회적 지도자들이 도덕적 모범이 되는 바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생겨나고 그런 운동이 일어날 조짐이 보인다. 국민들은 군림이 아닌 섬김의 지도자를 원하고 좋아한다. 어두움은 빛을 이길 수 없고, 미움은 사랑을 이길 수 없듯이 군림은 섬김을 결코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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