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현관 중문을 열던 아내가 비명을 지른다. 소리의 강도로 보아 신발에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거나 뱀만한 지네가 나타났을 거란 판단이 들었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때려잡을 것을 하나 들고(파리채로 뱀은 커녕 지네도 잡을 수는 없지만) 후다닥 달려가 보니 고양이 밥그릇 옆에 참새가 한 마리 누워 있고 새털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수리야~ 수리 어딨니?” 아내가 수리를 찾는다. 수리가 며칠 째 열이 내리지 않고 밥을 잘 먹지 않아 어제 저녁엔 (아내가) 현관에 재웠다. (현관문만 열려있으면 수리는 방충망 아래로 머리를 들이밀고 들락거린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수리는 안 보이고 수리가 누워있어야 할 자리에 참새 한 마리가 누워있다. “수리가 참새를 잡아 놓았네~” 하니 아내 생각은 다르다. 다른 고양이가 물어다 놓았을 거라고 한다. 수리가 요즘 며칠 째 아파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힘이 없을 텐데 수리가 한 짓이 아니라는 거다. 어제 저녁에 밥 얻어먹으러 왔던 길냥이 소행일 거라는 거다. 내가 보기엔 수리 짓이 틀림없어 보이는데 아내는 착한 수리가 그랬다고 믿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어제 저녁에 보았던 (낯을 가리는) 길냥이가 참새를 잡은 뒤 (용기를 내어) 현관 방충망 아래로 밀고 들어와 새털이 어지럽게 날리도록 밤 새 난리 부르스를 추다가 날이 밝자 홀연히 사라졌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 수리는 며칠 전 진주에 있는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진찰을 해보니 미열이 있어 혈관주사와 피하주사를 한 대씩 맞고 나흘 치 약을 처방받았다. 고양이는 혈관 주사를 맞히기가 쉽지 않다는데 수리는 온순해서 수의사가 두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다. 첫 번째는 수리 이빨이 수의사 손끝에서 딱 소리를 내었는데 하마터면 피를 볼 뻔 했다. 다행히 수의사가 더 빨리 도망가는 바람에 위기를 넘기고, 두 번째 내가 수리 목덜미와 턱을 제압한 뒤(벌벙 떨며) 앞발 에 혈관주사를 놓을 수 있었다. 효과가 빠르다는 혈관주사 덕분인지 그날은 조금 회복된 것 같았는데 열은 좀처럼 내리지 않고 활력이 없어보였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사료를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널부러져 잠만 잤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어제 주었던 사료 그릇이 깨끗하게 비어있고 옆에 참새도 한 마리 누워있다. 요즘 앞마당 능소화에 참새가 떼로 날아와 미국선녀벌레와 파티를 한다. 능소화는 내 방 창문 바로 앞에 있어서 이 장면을 나는 매일 본다. 능소화 꽃대에 하얀 선녀벌레가 오글오글 앉아 있으면 참새 한 마리가 달려들고 벌레들은 일제히 하얀 포물선을 그리며 땅으로 피신한다. 그러면 지켜보고 있던 다른 참새들이 쫒아가 쪼아 먹는다. 한밤중에 이 배부른 참새 한 마리가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어느 고양이의 기습을 받아 변을 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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