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주신 부모님께서 많이 약해져 가시는 모습은 참 마음이 아픕니다. 다들 경험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부모님은 제2차 세계 대전을 경험하셨던 분입니다. 아버님은 전쟁터에 가셨던 분이고요. 어렸을 때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 아버님은 재밌게 이야기해주시는 분이라서 그때 너무 무거운 마음으로 듣지는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상상할 수 없는 생명의 위기를 넘어오셨습니다. 전쟁의 슬픔을 말씀하시는데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싸우는 거지만 사실은 나라를 위해서라기 보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위해 평화를 회복하고 원래 살았던 삶을 다시 찾고 싶어서 싸웠다고, 그런데 상대도 아마 그 마음인데 전쟁터에서 마주보게 되면 싸워야 하는 것. ‘혹시 다른 세대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다행히도 우리 아버지는 한사람도 죽이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전우 중에는 전쟁 때 마음 상처를 끝까지 앉고 가는 친구도 있었다고 하십니다. 아무튼 그런 시대에 살아 오셨던 아버지가 얼마나 예의가 바르시고 되도록 남에게 죄송한 일 없이 살려고 하시는지... 지난번 아침에 청소기에 쓰레기가 남아있지 않은가 물어보셔서 “없다. 제가 청소했을 때 바로 버렸다”고 하니까 “잘 했다. 오늘 청소하는 사람이 오니까 청소기를 깨끗하게 하고 있어야 된다”고 하셨어요. 그 말이 맞는데 저는 아버지의 너무 예의 바르신 태도가 그 때야말로 아주 귀찮게 느껴졌습니다. 도움을 받아야 되는 나이가 됐으면 주는 대로 받으면 되지, 그 사람들은 돈 받고 하는 일이라 오히려 그냥 신경 쓰지 않고 받아주는 것을 원하겠죠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아버지는 연세가 많으셔서 도움이 필요해서 이 서비스를 받고 계시는데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청소기 안에 있는 쓰레기도 그 분들이 치우시게 놔두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아버지의 얼굴은 제가 너무 죄송스러울 수밖에 없는 슬픈 표정이었습니다. 제가 느꼈던 아버지의 가슴속 말이 “내가 그렇게 나이를 먹었나. 이제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다른 사람보다 잘 하는 일이 없지”라는 자기 자신이 이제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인식을 시켜버렸던 느낌이었습니다. 그 후 아버지는 변함이 없었지만 제가 너무 미안한 마음에 30여 년 전에 병원에서 봤던 한 장면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간단한 수술을 받고 하루 밤만 ICU(중환자실)에서 보내셨을 때 옆에 연세가 80대 후반으로 보이시는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링거를 맞고 계시는데 움직이는 것도 불편하게 보이시는데 오줌이 마려우시다고 화장실에 간다고 하셨어요. 며느리같이 보이시는 분이 기저귀 하고 있어서 그냥 싸도 된다고 하는데 남자가 기저귀에 오줌 싸도 되나, 안된다고 하시고 그럼 며느리가 오줌을 받아드린다고 하는데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그렇게 미안한 일을 시킬 수 없다 하시고 말을 안 들으셨어요. 어떻게 할 수 없이 며느리 되시는 분이 간호사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여쭤보러 가시는 사이에 자꾸 일어나시려고 하시고 저도 옆에서 안 된다고 기다리시라고 했는데 “일본사나이가 여자에게 오줌을 받아주라고는 못한다고 그렇게 죄송한 일은 안 된다”고 잠꼬대처럼 말씀하시면서 마지막으로는 링거도 자기가 당겨서 바늘을 빼버리셨습니다. 저도 당황해서 바로 간호사실에 알려드리러 갔던 그 때 생각이 났습니다. 옛날 우리 아버지 세대부터 더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강했습니다. 절대로 남에게 나 때문에 죄송한 일이 있으면 안된다는 마음이죠. 그래서 남에게 부끄러운 모습은 보여주지 말자라는 마음이 강합니다. 또 말하면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줘야 된다면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 그 생각을 하는 만큼일 수도 있습니다. 참, 일본 侍(사무라이: 일본의 무사)정신은 셉니다. 결국 그 할아버지는 4명의 간호사님이 오셔서 잡으셨지만 간다고 하셔서 마지막으로 수간호사님이 오셔서 “죽고 싶지 않으시다면 말을 들으셔야 됩니다”고 하시면서 일단 진정이 됐습니다. 우리 아버지 마음에도 이런 마음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되도록 아무한테도 미안안 일이 없도록 살고 싶다, 아직 나는 잘 할 수 있다라는 마음으로 정신을 다스리고 계시는 것 같은데 제가 그 마음을 너무 무시했던 것 같아서 나중에 아주 미안했습니다.<부모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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