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짜기에서 태어나 고생만 하다가 어릴 때부터 도회지 나가 동생들 뒷바라지 하고, 없는 살림에 입 하나 더는 마음으로 일찍 농촌으로 시집간 외사촌 누나가, 살림 장만하고 아들딸 낳아 잘 키우고 이제 좀 먹고 살만하니까 백혈병이 걸렸습니다. 아들딸이 골수 검사를 했는데 맞지 않아서 형제들이 누나 살릴 거라고 골수 검사를 했는데 마침 막내 동생과 골수가 맞아 골수 이식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 후 경과가 좋아 완치된 줄 알고 평생 농사지으면서 산 그 억척같은 생활을 버리지 못하고 무리하다가 쓰러져 끝내 먼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조문하고 오려고 하는데 손이 귀한 집이라 그냥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옆에서 호상(護喪)도 하고 외사촌들도 위로해야할 것 같아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평생 일만 시켜서 미안하다고 통곡하며 회한(悔恨)에 젖은 자형과 ‘이제 더 이상 아프지도 말고 들에 나가 일하지도 말고 편하게 쉬고 우리를 끝까지 지켜봐 달라.’며 오열하는 딸과 ‘엄마 사랑한다고 자주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 정말 사랑해. 그 동안 너무너무 감사하고 고마웠어. 이제 더 이상 아프지도 말고 이제 좀 편하게 쉬어. 엄마가 내 엄마여서 고맙고 감사했어.’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아들을 보며 눈물을 억지로 참고 먼 하늘만 보았습니다. 시어머니를 따라 아들딸과 교회를 다녀 장례를 기독교식으로 치르기로 해놓았는데 목사님이 오시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제가 우주 천체를 연구했던 스티븐 호킹 박사님의 장례식에 읽었던 성경구절을 읽고 가족들에게 권면(勸勉)의 말을 했습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을 이룰 때가 있습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습니다. 죽일 때가 있고 치료 시킬 때가 있습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습니다.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습니다.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할지 그 때를 알지 못합니다. 사랑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살면 좋겠습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합니다. 서로서로 사랑을 표현하며 살아, 남은 인생 후회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자식을 두고 남편을 두고 가는 고인의 마지막 소망일 것입니다.” 누나를 모시는 자리 주변에 아들딸에게 못다 준 사랑에 미안해하는 누나의 마음을 가득 담아 놓았는지 어머니의 사랑을 상징하는 구절초가 안개비 속에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여우가 우는 秋分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박용래 시인님의 ‘구절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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