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가까이 숨 가쁘게 살았다.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작가 이희권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지리산이 주는 푸근함이 너무 좋다.” 서울에서 함양군 백전면으로 귀촌해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희권(53) 화백은 이곳 생활에 충분히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5년 전 귀촌한 그는 2016년 6월 구산대안로 33-8 아늑한 산자락에 공방을 겸한 2층 집을 손수 건축해 그동안 꿈꾸어왔던 작품 활동을 즐기고 있다. 이 화백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렇다고 그림만 그리는 것은 아니다. 전공인 서양화는 기본이고 서예, 목공예, 인테리어에 더해 건축까지 못 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이다. 서예는 유학자인 부친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익혔다. 대학에서는 부전공을 했다. 목공예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서각까지 작품 활동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직업이 몇 가지인지 세어보지 않아 모르겠다”는 이희권 화백. 화가가 주업이라면 목공예와 인테리어, 건축은 부업이다. 그는 “작품 활동만으로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다”면서 “전업은 아니지만 짬짬이 인테리어나 건축 일을 하기에 조금은 여유롭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 화백은 귀촌하기 전 생계를 위해 웨딩스튜디오 무대감독으로 10년을 일했다. 예술가의 감각으로 신랑 신부와 어울리는 맞춤형 스튜디오 배경은 물론, 세트장을 만들면서 인테리어와 건축에도 일가견을 갖게 됐다. “프랜차이즈 웨딩업계 무대감독을 하다 보니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다”는 이 화백은 “전국을 다 다녀봤지만 지리산만큼 푸근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응용미술을 전공한 아내 김영옥(51) 씨와 미술학원을 운영했으나 IMF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 1999년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 귀농학교 미술강사로 내려와 강사 겸 귀농학교 학생으로 6개월 과정을 수료했다. 귀농학교는 순전히 스님의 권유로 입교했던 것이라 그때까지만 해도 귀농이나 귀촌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실상사에서 생활하는 동안 지리산의 편안함에 매료 됐다. 이 화백이 백전면으로 귀촌하게 된 것은 웨딩업계 무대감독을 하면서 알게 된 분의 도움이 컸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 분의 고향이 백전면인 데 공방 터도 그분 소유였다”고 했다. 손수 건축한 넓은 공방과 주위 환경은 목공작업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단다. “그림은 정적이지만 목공예는 동적이다. 다양한 무늬와 모양, 성질을 가진 나무를 다루는 일은 쉽지 않다. 고유의 특징을 살려내는 것이 목공예의 매력이다”고 했다. 목공작업은 지리산 인근에서 생산되는 목재만을 사용한다. 수입목보다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비싸지만 지리산 나무만의 특색이 있어 지리산권에서 생산된 나무를 고집한다고 했다. 대형 가구에서 플레이팅 도마·접시 등 다양한 생활 목공품 등을 만드는데 언제나 섬세한 마무리 작업은 아내의 몫이란다. 이 화백의 목공예품은 상림 토요장터나 자신의 공방에서 판매한다. 토요장터에는 작은 작품 위주로 몇 가지만 준비해 가지만 공방에서는 목공예품 뿐만 아니라 서양화 등 이 화백의 모든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매주 월, 수, 금요일에는 공방을 개방한다. 목공예를 배우는 회원들도 5명이나 된다. 회원들은 각자 다양한 재능을 살려 인테리어나 건축을 할 때는 한팀으로 일손을 돕고 수익을 나눈다. 이 화백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의미로 공방 이름을 ‘이즈비(ISBE)’라고 지었다고 한다. 독특하고 창의적이지만 튀지 않는 그의 작품세계가 공방이름에도 오롯이 녹아 있다. 이 화백은 목우공모 미술대전 대상을 비롯해 성남미술대전 대상, 신사임당미술대전 우수상,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 5회, 대한민국 수채화 대전 특선 2회 등 국내 권위의 미술대전에서 입상해 이름을 알렸다. 요즘은 오는 12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신작전’ 준비에 더욱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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