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림 숲에서 딱따구리와 다람쥐는 귀한 존재이다. 개체 수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들을 만나면 무척 반갑다. 지금까지 상림에서 본 딱따구리 종류는 큰오색딱다구리, 청딱따구리, 쇠딱따구리이다. 깃털 색이 화려한 큰오색딱따구리는 상림의 귀족 같다. 4년 동안 월별 관찰일지를 정리해 보니 큰오색딱따구리는 12달 모두 숲에 나타난다. 그러나 다람쥐는 겨울에 자취를 감추었다가 이른 봄에 나타난다. 한때 다람쥐는 숲에서 거의 멸종했다. 그러자 함양사람들이 다람쥐를 사다가 숲에 놓았다고 한다. 그 뒤로도 고양이나 고양이과 동물에게 수난을 당하는 모양이다. 인가와 가깝고 몸을 피할 공간이 넓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 위태로운 삶이다. 상림의 딱따구리와 다람쥐는 어떤 생활습관으로 상림의 숲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가까운 숲에서 닥다르르르르…… 낮고 조그만 소리가 들려온다. 이 소리의 주인공은 몸집이 작은 쇠딱따구리이다. 이들은 작은 몸집으로 재빠르게 움직이며 나무를 찍는다. 톡톡톡 두두둑 도독…… 이 굵직한 소리는 큰오색딱따구리가 나무줄기를 두들기는 소리이다. 나목이 되어가는 초겨울 숲에서는 딱따구리 소리를 더 자주 들을 수 있다. 겨울에는 먹이 구하기가 힘들어 나무를 더 많이 두드리는 것 같다. 딱따구리는 겨울 식량의 97%를 애벌레로 해결한다고 한다. 썩은 나무 둥치를 쪼아 20cm 넘는 혀끝으로 깊숙이 있는 애벌레를 쪼아 올린다. 혀끝에는 끈적한 가시가 달려있다. 신경 또한 혀에 밀집되어 애벌레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놀라운 생활사는 또 있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두드리는 속도는 시속 20km 정도라고 한다. 이때 뇌는 중력의 1.000배를 견딘다고 한다. 그 충격 때문에 뇌가 뒤로 밀리는데, 완충 역할을 하는 막이 뒤에서 뇌를 보호한다. 눈알이 튀어나오는 걸 막기 위해서는 눈을 감는다. 딱따구리는 어찌 이리도 위험한 생존방식을 터득하게 되었을까? 참으로 탁월한 능력이다. 딱따구리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나무를 찍는다. 야생에서 생존의 문제는 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 그만큼 강력하다. 숲을 거닐면서 나무를 찍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딱따구리의 운명 같은 삶을 엿본다. 부리가 주걱 같은 노랑부리저어새는 얕은 갯벌이나 하천 습지가 없어지면 물질을 하지 못한다. 절멸의 위험을 안고 있는 단 하나의 생존방식! 아무리 희귀하고 기찬 능력이라도 환경의 변화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우리는 빠른 변화에 대처하는 임기응변과 예측이 필요하다. 10월 초 한줄기 강바람이 휘몰아친다. 천년교 옆 갈참나무 잎이 뒤집혀 하얀 물결처럼 펄럭인다. 도토리는 시간차를 두고 거의 한 달 동안 떨어져 내린다. 다람쥐의 계절이다. 숲 북쪽의 물레방아 앞에서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는 다람쥐 한 마리를 본다. 단단한 이빨로 도토리의 껍질을 잘도 까먹는다. 지켜보고 있으니 양손으로 껍질을 깐 도토리를 들고 쪼르르 참나무 위로 올라간다. 도토리는 밤이나 호두에 비하면 쉬운 먹잇감이다. 껍질이 단단한 견과류는 많은 양분을 담고 있어 설치류에게 포기할 수 없는 식량이다. 설치류의 이빨은 대략 6천만 년 전부터 진화했다. 견과류는 먹히지 않으려고 껍질을 더욱 단단하게 감쌌고, 설치류는 이빨을 더욱 예리하게 단련했다. 끊임없이 방어와 공격을 하면서 공진화해온 것이다. 생명을 건 전쟁의 역사는 놀라운 변화를 이끌었다. 설치류의 단단한 이빨과 호두처럼 두꺼운 껍질을 가진 열매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거울처럼 마주 보며 대척점에 서 있는 모진 생명사(生命史). 유전자에 각인되는 변화란 오래도록 생명을 걸어야 가능한 모양이다. 진화의 아이러니다. 상림의 오랜 숲에는 다양한 곤충이 모여든다. 사슴벌레가 살기 위해서는 껍질이 두껍고 굵은 참나무가 필요하다. 딱정벌레는 크고 두꺼운 참나무에 구멍을 뚫어 굴을 판다. 비단벌레 종류도 수피를 뚫고 알을 낳아 애벌레를 키운다. 딱따구리를 비롯한 새들은 곤충의 애벌레를 먹이로 삼는다. 특히 딱정벌레 애벌레는 큰오색딱따구리에게 중요한 먹이라고 한다. 다양한 생명이 살아가려면 죽은 나무들이 있어야 한다. 거대한 나무 한 그루는 죽어서도 수많은 생명의 보금자리가 되고 젖줄이 된다. 다람쥐는 상림 숲에서 군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2018년 4월 중순 먹을 것을 찾아 숲속을 뒤지는 호랑지빠귀를 쫓아내는 것을 본다. 춘궁기의 먹이 경쟁이다. 이 시기에 다람쥐는 숲을 헤집어서 다양한 열매를 찾아 먹기 바쁘다. 사람들이 숲속에서 가을 도토리를 주워가면 다람쥐는 더욱 배가 고플 것이다. 그리고 상림의 숲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낙엽으로 돌아가는 가을은 내려놓기 좋은 계절이다. 숲을 걷다 보면 이따금 날렵하게 나무를 타는 다람쥐의 모습도, 목탁 치는 딱따구리 소리도 똑 또르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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