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宇宙가 물物과 상象의 음양陰陽으로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과 관련하여 불교경전에 있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의미를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해보기로 한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에서 관측이 가능한 상태를 말하는 ‘색色’은 우리가 살고 있는 단단한 물질세계로 양자量子 상태를 뜻하며, 텅 비어 있다고 보거나 관측 불가능한 상태를 말하는 ‘공空’은 작용이 없어 겉으로는 보이지 않고 고요해 보이나 내부의 본체는 생동하고 있는 에너지세계로 장場의 상태를 의미한다. 양자물리학에서 아주 이상한 특성으로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 경험에는 맞지 않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게 있는데 한번 살펴보자.
우리는 세상의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배웠다. 그런데 실제 원자의 대부분은 비어 있다. 가령 수소원자를 예로 든다면 원자핵의 크기가 농구공 정도 된다고 가정하면 수소원자의 전자는 원자핵의 외부궤도를 도는데 그 거리는 약 32Km 정도로 떨어져 회전하고 있으며 그 사이는 텅 비어 있다. 우주 역시 대부분은 비어 있는데, 그 비어 있는 공간의 단위로 내려가게 되면
결국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곳까지 내려가게 된다.
이런 우주宇宙의 미세한 기초 단계에 정보와 패턴이 존재한다. 그것이 우주宇宙의 바탕이며 그러한 단계에서는 빅뱅 이후의 모든 정보가 존재한다. 그래서 우주宇宙에는 물질이 존재하더라도 대부분 비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양자물리학과 상대성이론에서 보면 진공眞空 속에는 과 맞먹는 양의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하며 E=MC²이론으로 보면 그 에너지의 양은 엄청난 것이다.
서울대 이충웅 교수는 “우주宇宙 공간을 허공虛空으로 생각한다. 현대 과학으로 입자의 크기가 10의 마이너스 18승 센티미터보다 작으면 우리는 관찰할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우주宇宙 공간을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10의 마이너스 18승 센티미터 보다 작은 입자가 우주宇宙 공간에 꽉 차 있다.
현대 물리학의 실험 결과에 의하면, 강력한 r선을 우주 공간에 쏘면 양전자와 음전자가 생긴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허공虛空이 양전자와 음전자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음양陰陽의 원리는 여기서 시작된다.”라고 하며 우주宇宙 공간은 텅 빈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음양陰陽의 원리로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 우주宇宙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처럼 꽉 차 있는 것 같지만 텅 비어 있고, 텅 비어 있는 것 같지만 꽉 차있는 상태로, 물질인 색色조차도 사실 우주질宇宙質이 반응해 일으키는 허상(홀로그램)에 불과한 것이다.
경희대 김상욱 교수는 “하나의 정상 상태에서 다른 정상 상태로 전자가 도약한다. 여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표현이 등장하는데, 바로 ‘파동이면서 입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원자가 아니다. 문제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보어는 더 나아가 문제는 우리가 가진 ‘언어’에 있다고 지적했다. 상보적인 두 개념은 일상에서는 분리되어 보인다.
우리의 언어는 ‘입자’와 ‘파동’과 같이 이들을 분리된 상태로 기술할 뿐이다. 문제는 전자가 이중성을 가진다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에게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상보적相補的으로 가지는 상태에 대한 ‘언어’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어휘 부재의 문제가 아니라 개념 부재의 문제다.”라고 하며 음양陰陽의 원리처럼 물질적인 특성인 입자성(色)과 에너지적인 특성인 파동성(空)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참고로 진공眞空과 관련해 민족수련법인 국선도의 수행내용을 보면 태극太極의 돌아감(회전)은 수승화강水昇火降 또는 수화작용水火作用인 임독맥任督脈이 유통되는 상태에 비유되고, 무극無極의 텅 빔은 국선도 내공법의 마지막 9번째 단계인 진공단법眞空丹法으로, 몸과 마음을 한없이 분열시켜 나와 우주의 경계가 소멸되는 상태로 가는 마지막 단계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변화의 극치를 의미하는 9는 최고의 단계나 경지를 의미하는 궁극의 숫자로서 국선도의 9단계나 단학丹學에서의 구년공완九年功完, 바둑에서의 9단, 자죽염을 9번까지 굽는 것, 녹차나 홍삼 제조를 9증 9포(아홉 번 찌고 말리는 것) 하는 것들이 모두 9가 다시 0(無極)으로 가는 ‘마지막 숫자’이자 현실계의 ‘완전수’라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10이라는 숫자는 절대계의 ‘완전수’로 다시 한 번(1) 처음(0)으로 돌아감을 뜻하는데, 피타고라스도 10을 완전수이자 모든 것의 원리(arche)라고 말했다. 필자는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十字架가 절대계의 완전수인 10을 의미하는 한자 ‘十’과 동일한 것이 단순히 우연만은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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