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가을 수확을 끝내고 서울여행을 가게 되었답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두 아이를 동반한 가족 체험 여행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다른 집과 달리 저희집은 벼농사를 하지 않고 밤 농사와 곶감, 무 농사를 하는데 밤 수확은 끝이 나고 소비자 직거래로 판매하는 택배만 보내면 되는데 휴일을 낀 기간 동안 다녀오는 일이어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듯 싶어요. 밤 농사를 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아시겠지만 밤을 줍는 일은 앞치마에 수 킬로씩 밤을 달고 산비탈을 다니는 반복된 일이어서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데 이제 그 힘든 여정은 끝이나 한숨 돌리게 되었네요. 매년 반복되는 가장 힘든 시기가 끝이 난 것일까요? 사실 그렇지는 않답니다. 서울을 다녀오면 바로 곶감 작업을 위한 곶감 덕장 대청소와 감말랭이 건조 판 청소 등 할 일이 태산같이 밀려 있답니다. 남편은 감을 실어 나르고 창고와 저장고에 감 박스를 가득 채우면 그다음엔 감깎기가 시작 되겠네요. 살을 에는 겨울 추위에 밤 늦은 시간까지의 곶감 작업은 또 얼마나 힘든지 모른답니다. 일하는 힘겨움도 그렇지만 아이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은 참 많답니다. 휴일이면 아홉 살, 다섯 살 두 아이만 남겨두고 일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작은 아이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데 아이를 떼어두고 일하는 심정도 만만치가 않거든요. 아이들이 갓난 아이일땐 감 박스에 요를 깔고 아이를 그 안에 두고 일하던 기억도 생생하네요. 휴일도 없고 정해진 시간도 없는 끝도 없는 농사일. 그래서 어느 날 남편에게 물어 보았답니다. 왜 이 힘든 농사일을 하느냐고. 이 일을 하기 전엔 무슨 일을 하였느냐고요. 남편은 미래의 비전을 위해서 농업인의 일을 선택하였다고 하더군요. 과거엔 건축일을 하였고, 컴퓨터 관련 자격증과 건축관련 자격증을 수개나 가지고 있지만 결국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데 자신이 없어 포기하였다고 하더군요. 돈을 떼이거나 사람에게 지친 경험도 함께 이야기 하면서요. 갑자기 생뚱한 질문을 하는 저를 남편은 한참을 바라보더군요. 아마도 저의 힘겨워하는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으로. 순간 괜한 이야기로 남편을 혹여 가슴 아프게 한건 아닌가 싶더라고요. 사실 남편은 낮에 그렇게 힘들게 일하고도 또 밤 늦은 시간, 혹은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고 컴퓨터 앞에서 일할때가 많거든요. 농사일과 유통을 겸해서 하다보니 일은 두배로 많고, 머리도 그만큼 복잡하고 힘든 것을 잘 아는데. 태풍 오는 날엔 저장고 위에 물이 샌다며 지붕 강판 공사를 하다가 5미터 높이에서 그만 떨어진 남편. 다치긴 했지만 큰 위급한 상황은 생기지 않아서 “아직 저 세상으로 갈 운명은 아닌가보네”라고 농담을 건네면서도 다리와 가슴 얼굴 팔 등에 상처를 입은 남편을 보니 저도 모르게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농업인의 아내가 된 순간부터 은연중에 좋은 직장을 가진 남편을 만나지 못한 원망의 마음이 저의 가슴 한켠에 있었는데 그 마음을 남편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가 봐요. 어찌보면 남편을 만나 부모님과 동생 오빠의 삶까지 큰 도움을 받았는데. 알고보면 공주가 왕자를 만나는 거잖아요. 사실 저는 공주가 아니거든요. 이번 여행에서 남편의 휴식과 가족의 소중함을 간직한 행복한 추억을 다듬고 오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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