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논쟁을 마다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 고백하건대 참으로 바보 같은 짓이었다. 상대의 주장이 답답하여 흥분하기도, 참 이렇게 뭘 모르고 있구나 안타까워하기도 했는데 이때 동원된 얄팍한 논리의 대부분은 신문을 통해 얻은 것이었다. 어린 시절 필자에게 신문은 세상과 통하는 窓(창)이었고 교사였다. 필요한 常識(상식)과 한문도 신문을 통해 익혔고, 신문기자가 되는 것이 장래의 희망이었다. 70-80년대 정치적 격동기를 지나며 현실정치나 사회문제에 대한 개인적 견해의 대부분도 신문을 통해 형성되었는데 그 시절의 신문은 선별된 지식과 정보의 보고였고 입법, 사법, 행정에 이어 민주주의 사회의 제4부라 할 言論(언론)의 근간으로 기능하며 나름의 권위를 갖고 있어 보였다. 귀촌 초기 신문을 보기 어려워 내심 불안했는데 이내 몇 달씩 신문을 보지 않아도 일상생활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것이 신기했다. 사회문제에 둔감해지기도 했지만, 정치적 관심은 높아도 정치지형은 단순한 지역정서라 어느 누구하고도 정치적 문제로 토론할 일이 없었고. 잘난 체 하는 말을 들어줄 이도 없어 세상일은 그야말로 남의 일이 되었다. 한편은 정치관련 뉴스라는게 결국은 내용은 같은 상품을 포장만 바꾸어 배달하는 거구나! 라는 깨우침과, 질이 낮은 정쟁으로 치환되어 국민과 언론으로 부터 조롱거리가 된지 오래된 정치를 언필칭 좌파, 우파를 막론하고 “아 저건 저들의 직업이지”하는 냉소적 시각으로 보게 되면서 일방에 치우쳤지만 확고했던 필자의 정치적 所信(소신)도 허무해져 버렸고, 정권적 차원의 뭔가 비난할 일이 생겨도 “잘하고 싶었겠지 설마 일부러 그랬을까”하고 이해해 주는 대신 앞으로의 정치적 선택 만큼은 “나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하기로 정리하였다. 長長(장장) 두 달에 걸쳐서 모든 신문이 지면의 대부분을 “一介(일개) 장관의 임면에 관한 문제”로 채우고 그 신문이 만든 종편이 “신문을 읽어 주는 방식”으로 “曺國(조국)문제”를 “祖國(조국)의 命運(명운)이 달린 문제”로 만들어 내는 영향력을 과시했고 그 결과 우리의 祖國(조국)은 진영을 둘로 나누어 언제 끝날지 모를 정쟁중에 있다. 검투사 같은 논객들을 앞세워 동안의 정쟁史에 비추어 새롭거나 대단할 것도 없고 언제 어떻게 결과가 되어도 一方(일방)은 승복할리도 없는 소모적 논쟁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더니 급기야 “陣營論理(진영논리)”를 내세우며 서초동과 광화문에 “陣(진)”을 치고 국민들을 편을 갈라 대규모 기세싸움에 동원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은 정치권은 논외로 하고 신문을 대표로 하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지구가 위험해지고 있다는 경고등이 켜진지는 이미 오래다. 먼 나라 일이거나 먼 훗날의 일 같았던 미세먼지, 미세플라스틱, 그리고 기후온난화 같은 전 지구적 위기를 함양에서도 체감하고 걱정해야하는 대전환기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실업문제나 세대간 갈등, 무역전쟁으로 치닫는 한일관계도 가벼운 문제가 아니요 태풍과 아프리카돼지열병도 힘을 모아 대비해야 한다. 북핵과 한반도 평화문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 믿었던 미국, 일본조차 자국의 이익을 위해 염치를 내팽개치는 냉혹한 국제정세에 어찌 대처할 것 인가? 하나같이 신문이 쓰고 이슈화하지 않으면 국민의 관심과 노력, 고통분담을 이끌어 낼 수 없고 때를 놓치면 다음 세대에게 치명적 피해를 끼칠 엄중한 사안들이 줄을 선 이 위급한 시기에, 두 달이 넘도록 기껏 “조국”정도를 가지고 선수와 심판의 역할을 하며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는 이 나라 언론현실이 참으로 참혹하다! 그 시절 세상과 통하는 창이고 선생님이었던 그 신문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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