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버지로부터 할머니 집을 지을 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시던 초가집이 오래되어 일부 수리와 확장을 하게 되었다. 확장을 위해 벽을 헐었는데 그 속에 또 다른 벽이 있었다. 한 사람이 들어가기도 힘든 폭이 좁고 긴 공간이었다. 궁금해 하는 아버지께 할머니는 “그곳은 일제 강점기에 식량을 숨기던 곳”이라고 말씀해 주셨다고 하셨다. 필자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일제 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 산미증산계획, 식량수탈에 관해 배우면서였다. 학교에서 배운 일본의 식민지 지배 정책과 아버지의 말씀이 겹치며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학창시절 동양척식주식회가 어떤 곳인지 별 관심 없이 시험을 위해 외우기만 했다. 성인이 되어 이런 저런 책과 자료를 통해 동양척식주식회사에 관해 좀 더 알게 되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본 정부나 조선총독부가 아닌 민간단체로 위장해 조선침략의 선봉에 선 회사였다. 일본은 조선총독부를 통해 정치적 방향을 제시하고, 동양척식주식회사는 그 방향에 따라 사업을 펼치며 조선의 땅과 경제력을 잠식시켰다. 이처럼 일제는 철저히 정부의 역할과 민간회사의 역할을 분리하는 이중적 정책을 사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통계와 자료를 가지고 일부 지식인들이 ‘학자의 양심’이란 말로 일제의 침략 정책을 옹호하고 우리 민족의 아픔을 왜곡하고 있다.(위안부, 식량수탈, 강제노역 등)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것은 학문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와 인식(해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난 과거를 해석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이유는 역사자료의 객관성, 그 자료의 해석, 해석자의 시각, 즉 관점에 따라 역사는 다양하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해석의 문제를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말한다. 카는 ‘역사는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역사가의 해석’이라고 말한다. 또 ‘역사를 해석하는 역사가는 역사연구에 있어 자신을 완전하게 객관화할 수 없다’는 역사 해석의 한계도 지적한다. 그럼에도 역사가는 역사적 사실과 지속적 상호관계를 통해 자신을 객관화 시켜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가 되고, 그 대화는 현재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함을 말한다. 필자가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 꽃다운 나이에 몸과 마음을 짓밟힌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 극심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근로 정신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고, 이 또한 역사적 자료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의 입에서 비상식적 말과 역사 왜곡이 말을 잃게 한다. 이들은 어떤 역사와 대화하고 있는가? 어떤 관점으로 대화하는가? 어떤 미래와 대화하고 있는가? 미국의 양심이란 별명을 가진 노암 촘스키 교수는 지식인은 주어진 정보와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비판과 분석을 통해 진실을 말하는 것이 지식인의 책임이라고 했다. 촘스키 교수가 말하는 ‘비판과 분석’은 객관화의 과정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시대의 지식인들에게 당부한다. 자기 자신을 좀 더 객관화할 것을... 우리의 말과 주장을 위해 세 가지 객관화가 필요하다. 먼저 내 주장의 근거가 되는 자료의 객관화, 둘째는 역사와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의 객관화, 셋째는 내가 주장하는 의도의 객관화이다. 부디 이 나라의 지성들이 자신과 자기 지지식의 객관화를 통해 그 책임을 성실히 감당하기를 다시 한 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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