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잠을 설쳤다. 추우면 이불을 하나 더 덮고 자면 될 것을 지난여름 폭염에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차가운 기운을 살짝 즐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나 보다. 어쩌면 아기 엄마의 젖가슴을 파고 들어온 아기의 차가운 고사리 손 같은 반가움이라고나 할까? 나는 불쑥 찾아온 찬바람을 돌아온 연인처럼 껴안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밤을 보냈다. 어쨌든 이제 잠자리에 들 때는 창문을 닫고 이불도 조금 두꺼운 걸로 덮어야 할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고 감이 어른 주먹만큼 굵어지니 또다시 곶감 깎을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지난여름 두 달 동안 농업기술센터에서 브랜딩 패키징 교육을 받은 덕에 곶감 브랜드를 개발했다. 귀한곶감이라는 뜻의 귀감이라는 브랜드를 특허청에 상표 출원을 했고, 로고 디자인도 전문 디자이너에게 의뢰를 해서 포장에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십 수년째 곶감을 만들며 오래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엄두가 나지 않았고 마음 뿐 이었다. 이제는 해봐도 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겨 올해 한번 해 보려고 한다. 나는 이 세상 모든 종류의 감을 곶감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한 상자 안에 고종시, 대봉, 재래고종시, 반시, 단성시, 둥시, 수시 등으로 정성들여 말린 곶감을 몇 개씩 담아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곶감세트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감은 성질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한 사람이 많은 종류의 곶감을 제대로 말리고 숙성시키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다들 자기 지역에서 수확되는 감을 깎아 말리는 게 보통이다. 예를 들면 함양, 산청에는 고종시, 상주에는 둥시, 청도에는 반시, 함안에는 수시 등등이다. 농부들은 자기 지역에서 나오는 감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자랑한다. 다들 임금님께 진상했던 곶감이라고 한다. 나는 욕심을 내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하는 그 모든 곶감을 한번 만들어보려고 한다. 이렇게 모든 종류의 곶감을 담은 상자는 음악으로 치면 교향곡이라 할 것이다. 나는 여태 고종시 곶감과 대봉 곶감을 주로 만들었다. 포장 상자에도 고종시는 고종시끼리 대봉은 대봉끼리 같은 종류의 곶감만 담았는데 이제는 고종시 대봉 뿐 만이 아니라 반시, 둥시, 단성감, 재래 고종시, 수시 등등 만들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곶감을 한 상자 안에 담아 보려고 한다. 단순히 재미로 하는 가벼운 마음이 아니라 브람스나 말러의 교향곡을 재현한다는 진지한 마음으로 곶감으로 만드는 제대로 된 곡을 써보려는 것이다. 교향곡은 4개나 5개의 악장으로 나뉘고 각 악장에는 한 두 개의 주제와 부주제가 있다. 말러 1번 교향곡이라는 부제가 붙은 곶감 상자는 악장에 따라 주제를 연주할 곶감이 달라질 것이다. 제4악장에는 숙성이 아주 잘된 레드와인 빛깔의 대봉곶감이 제1주제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고 재래고종시와 반시 둥시 단성시로 제2주제를 만들어 수차례 반복하고 변주해야할 것이다. 내가 이 야심찬(?) 프로젝트를 매년 우리 집 곶감을 깎아주시는 절터댁 아지매에게 귀띔했더니 돈 안 되는 씰데없는 짓 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하라고 한다. 사람은 하던 대로 해야 하는 법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씰데없는 짓을 해보려고 한다. 내가 곶감을 깎아 돈을 벌면 얼마나 벌 것이며 이 짓 하다가 손해를 보면 또 얼마나 잃을 것인가? 귀감을 만들며 사소한 행복이나마 찾아보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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