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포털 사이트 뉴스가 ‘조국’이란 키워드로 도배되어있다. 관련 의혹만 해도 손가락으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지라 온 국민의 시선이 조국에게 집중된 듯하다. 심지어 국회의원들까지 나서서 삭발식을 하는 모습을 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기사가 조국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기사는 아니라는 점 먼저 말씀드린다. 필자는 조국이란 인물을 그렇게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개인의 정치색을 강하게 드러내어 소중한 기사 집필 기회를 주신 주간함양 국장님께 혼나긴 싫다. 그저 필자를 포함해 우리가 알지 못하게 생활 속에서 저지르는 한 가지 실수를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을 뿐이다.조국만큼은 아니지만, 삭발로 한순간에 유명(?)해지신 정치인 박인숙 씨의 최근 발언이 문제시되고 있다. 조국의 논란거리를 지적하며 그를 ‘정신병자’라고 칭한 것인데 이 발언을 놓고 각종 장애인 단체들이 장애인의 인권을 무시한다며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일단 박인숙 의원이 지적한 문제가 정신병자의 범주에 해당되는지부터 알아본다면 조국은 정신질환자가 아니다. 오늘날 정신질환의 기준으로 사용되는 미국 정신의학회(APA)의 DSM-5에는 조국의 특정 언행이 정신 질환의 범주에 해당되거나 의심되는 분류의 항목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정신장애인 전문매체 ‘마인드 포스트’에서 밝혔으며 논란의 당사자이자 의사 출신인 박 의원 본인도 이를 인정하였다. 그렇다면 박 의원은 왜 조국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정신병자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했던 것일까. 바로 이미 이 사회에 만연한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말해, 평소 언행에 신경 쓰고자 하는 필자도 장애 단체의 반응을 보기 전까지는 ‘정신병자’라는 단어의 쓰임에 대해 친구끼리 거리낌 없이 써왔다. 그만큼 애써 살피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차별에 가담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빈번하게 장애라는 단어를 희화화해서 사용하고 있다. 단지 장애를 지닌 당사자가 내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고 했던가. 비록 누군가를 상처 주기 위한 말이 아니었을지언정 당사자는 무심코 나온 말에 상처받는다. 이는 단순히 장애인들 앞에서만 주의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때때로 우리는 사회적 약자들을 지칭하는 다양한 단어들을 누군가를 비방할 목적으로 사용하곤 한다. 주로 장애인, 기형아, 특정 질환 보유자 등 신체적 약자는 물론이고 오늘날에는 외국인 노동자, 빈민, 성소수자와 같은 문화적 약자까지 그 종류와 범위도 다양해지고 있다. 필자가 다니는 학교에 비유하자면 누군가가 돈 쓰는 것에 인색한 친구를 두고 시쳇말로 ‘흙수저 새끼’라고 했다 치자. 그런데 그 옆에 실제로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 저소득층 자녀가 있다면 그 학생이 받은 상대적 박탈감은 아무도 알아 줄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언제나 우리가 사회적 약자를 인지하고 있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약자일수록 자신의 결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더 이상 모멸감을 주기 위해 사람을 직접 지칭하는 비속어는 사용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비록 사소해 보일지라도 이런 사소한 관심과 언행 하나하나가 누군가를 울고 웃게 만들 수 있다면 기꺼이 나서고 싶은 마음이다. 배려야말로 겉치레식 공동체 주의가 아닌 진정으로 다양성이 존중받을 수 있는 포용적 공동체로 나아가는 첫 삽을 뜨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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