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마산(창원)과 강릉에서 나고 자랐지만 함양이 더 고향 같다. 20년 동안 변함없이 사랑을 주신 덕분에 함양군민으로 잘 살고 있다. 너무 감사하다.” 함양읍 용평길 12-4 청해수산 정호(59)‧이영수(63) 씨 부부는 함양에 정착한지 올해로 20년이 됐다. “학연 지연 혈연으로 얽혀 살아가는 시골살이지만 개업 때부터 단골을 자처해 꾸준히 찾아주는 손님들 덕분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며 이웃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정호 씨는 마산 부림시장 내 건어물상 아들로 태어나 바다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사는 마린보이다. 마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중공업에 입사해 2년을 근무하고 해병대에 입대했다. 전역 후 외항상선 선원이 돼 바다와의 인연은 계속됐다. 5년 동안 47개국 주요 항구는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한다. 알래스카 해역에서 대형 트롤선단이 조업해 선상에서 곧바로 가공한 상품을 받아 러시아를 오가며 운송했던 일,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얼핏 들었던 파나마운하를 통과 했던 일 등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정 씨는 “파나마운하는 계단식 독(dock)을 이용해 배가 산을 넘는데 운하 정상은 넓은 호수다. 정말 장관이다”며 30여 년 전 기억을 소환했다. 5년간의 선원생활 후 고향 마산으로 돌아와 물차(활어수송차)를 구입해 횟집에 활어를 납품했다. 이때 창원시 평화상가에서 횟집을 운영하던 이 씨를 운명처럼 만나게 된 것이다.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20대 못지않은 미모와 선한 인상이 정호 씨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결혼 후에도 창원에서 횟집과 활어수송업을 이어갔다. 1997년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하던 일을 모두 정리하고 요양 차 산청군 금서면 화계로 이주했다. 화계로 삶터를 옮긴 후 결혼생활 5년 동안 생기지 않았던 아들을 얻었다. 정 씨 부부는 아들(21)이 태어난 이듬해 어머니가 끝내 세상을 떠나자 서울행을 결심하고 화계에서 하던 가든업 정리에 들어갔다. 이들 부부의 음식 솜씨와 품성을 알고 지내던 함양지역 해병대 선후배들이 이 소식을 듣고 식당 할 곳을 알아봐 주겠다며 함양 전입을 적극 권유했다고 한다. 상경 계획을 접고 함양으로 이사해 위성초등학교 앞에서 횟집을 시작했다. 9년쯤 그곳에서 횟집을 하다 2008년 2월 이곳으로 이전했다. 정 씨 부부는 “우리 횟집도 여느 횟집과 특별히 다른 건 없다”면서 “횟집은 싱싱한 횟감이 생명이라 활어를 직접 공수해 정성껏 상을 차린다”고 했다. 그러나 청해수산은 밑반찬부터 예사롭지 않다. 계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홍어, 멍게, 가리비, 생선구이, 전, 묵은지 등 무려 20가지가 넘는 밑반찬이 입과 눈을 즐겁게 한다. 청해수산의 회는 선도가 높은 만큼이나 식감도 맛도 좋지만, 양 또한 푸짐하다. 물차를 소유하고 있어 필요한 만큼 그때그때 활어를 공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활어를 수송하고 수조를 관리하는 것은 정호 씨의 몫이다. 오랜 횟집 경력의 이영수 씨가 주방장이자 청해수산의 대표다. “손님들은 제가 사장인 줄 알지만 저는 종업원이다. 회도 아내가 더 잘 뜬다”고 추켜세운다. 그러면서도 “장어나 하모, 도다리 등 힘든 횟감은 내가 손질한다”며 “놀고먹지는 않는다”고 했다. 봄에는 도다리 쑥국, 여름은 물회와 장어구이, 가을 회덮밥, 겨울 생물메기탕, 생대구탕 등이 청해수산의 계절별 식사 메뉴로 인기다. 이 씨는 “겨울철 특별 이벤트로 매주 수요일 ‘대방어 데이’를 3년째하고 있다. 손님들의 호응이 너무 좋다”며 “올 겨울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겨울철 별미 대방어를 맛보기 위해서 예약은 필수라고 귀띔한다. 부부는 닮는다는 옛말을 입증하듯 정호‧이영수 씨 부부의 선한 인상은 넓고 푸른바다 만큼이나 넉넉함으로 닮아 있다. 청해수산이 손님들에게 전하는 또 하나의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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