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림의 숲속에는 너무나 다른 눈길을 끄는 식물군이 있어왔다. 그 주인공들은 산죽과 꽃무릇이다. 산죽(조릿대)은 우리 산야에 자생하고 있지만, 꽃무릇은 중국 양자강이 고향이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와 자생하고 있다. 두 식물의 생태환경을 보면 무리 근성이 무척 강하다. 다른 식물이 끼어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점은 산죽이 좀 더 강하다. 나무처럼 사시사철 자라기 때문일 수 있다. 이들은 강인한 근성만큼이나 생활에 많이 쓰였다. 산죽은 복조리, 발, 지붕재 등 생활재로 다양하게 써왔다. 꽃무릇은 알뿌리의 독성을 이용하여 단청, 탱화 등의 안료나 책을 메는 데 방부용으로 썼다. 독성을 빼고 식용도 했다. 이 둘은 닮은 점이 많다. 하지만 자연경관과 생태·문화적 특성은 큰 차이가 있다. 함양상림에서 산죽은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고, 꽃무릇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상림 숲속을 주름잡은 두 식물을 한 번 들여다보자. 산죽은 키가 2m 정도 자란다. 사시사철 푸른 물결을 이루는 댓잎이 매력이다. 대나무과 식물답게 꽃은 아주 드물게 핀다. 주로 5월에 노란 꽃이삭을 매단 꽃이 핀다. 4년 동안 상림의 숲속에서는 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상림 숲 아래에는 산죽이 무성했다고 한다. 상림은 천년 세월 위천의 유일한 선상지를 이루었다. 이 넓은 터전에 언제부터 산죽이 자리잡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상류 산기슭에서 홍수에 떠내려 온 산죽이 자연스럽게 물길을 따라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 갯버들이나 원추리, 꽃무릇처럼 생명력이 강한 뿌리식물도 이렇게 이동을 한다. 상림 숲속을 가로지르는 개울 주위에는 특히 산죽이 무성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 산죽은 가려주고 감싸 안아주는 역할이 컸다. 무더운 여름이면 마을 사람들은 숲속 개울에서 목욕을 즐겼다. 눈가림을 해주는 아늑한 분위기는 여인네들에게 위요심리를 주었다. 또 산죽은 낙엽수로 이루어진 숲의 퀭한 겨울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앙증맞은 댓잎에서 싸락싸락 눈꽃이 피어나면 고운 정서도 더불어 피어났다. 겨울 숲에서 만나는 색다른 자연의 선물이었다. 이러한 추억들이 상림에 기대어 살아온 사람들의 심성에 아직도 남아 있다. 하나의 위안이자 소소한 행복이었던 산죽은 꽃무릇을 심으면서 거의 사라졌다. 꽃무릇은 불붙는 열정이 극적인 식물이다. 해마다 9월 초·중순 입술 붉은 꽃이 핀다. 한순간 강렬하게 불타오르는 열애에 눈이 먼다. 그래서 전국의 관광지 조경용으로 인기가 높다. 꽃이 활짝 피면 제비나비와 호랑나비 종류가 찾아온다. 화려한 날개를 팔랑이며 이꽃 저꽃을 누빈다. 꿀을 찾는지 꽃밥을 찾는지 잘 모르겠다. 가끔 검은물잠자리가 찾아오지만 다른 곤충은 보지 못했다. 곤충은 붉은색 꽃을 즐겨 찾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붉은 꽃잎과 대비되는 노란 꽃밥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수술보다 길게 튀어나와 있는 암술머리를 보면 퇴화하여 그냥 길쭉한 침처럼 보인다. 꽃이 질 때 꽃잎과 꽃술은 눈물처럼 비틀어지며 흘러내린다. 강렬한 열애만큼이나 허무도 짙다. 인생무정이라고나 할까. 결국 열매는 없다. 그래서 꽃무릇은 누군가 옮겨주지 않으면 멀리 이동할 확률이 거의 없다. 꽃무릇은 강렬한 열애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꽃무릇은 다른 식물이 갖지 못한 놀라운 특성이 있다. 꽃이 지고 나면 새 삶을 시작한다. 낙엽이 뒹굴어 을씨년스러운 중앙산책로 양쪽을 푸른 잎으로 빼곡히 채운다. 겨우내 숲 아래를 싱싱하게 물들인다. 다른 풀들이 겨울잠을 잘 때 꽃무릇은 열애의 꿈을 꾼다. 알뿌리에 독한 영양분을 채곡채곡 담으면서… 동장군도 물리치는 강인한 욕구이다. 남다른 생활상을 꿈꾸는 생명의 속내는 무엇일까? 산죽은 오래전부터 상림 숲에 터를 잡고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꽃무릇은 십수 년 전에 강제로 옮겨졌다. 이때 함께 들어온 외래식물도 많다. 이 행위는 천년숲의 하층 경관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마을숲이라는 전통문화가 공원이라는 관광문화로 이동하는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꽃무릇이 피는 때에 맞춰 지역축제가 열리고 수많은 사람이 몰려든다. 함양상림의 식생 변화가 꽃무릇을 심기 전후에 어떻게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어떤 종류의 풀들이 얼마만큼 남아 있고 사라졌는지 지금은 살펴볼 수 없기 때문이다. 천년을 마을숲으로 이어온 자연식생이 훼손되는 것은 커다란 손실이다. 한 종의 풀꽃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숲의 변천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종의 다양성을 높여 생태계 그물망의 중요한 일원이 되기도 한다. 2016년 11월 중순 짙어가는 어둠 속에서 족제비 한 마리를 본다. 어스름 인기척에 푸른 꽃무릇 풀숲에서 고개를 내밀다가 눈길이 마주친다. 화들짝 놀라면서 후다닥 몸을 숨긴다. 지가 무슨 잘못이나 저질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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