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6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이르기까지 여야는 끝임 없는 진실 공방을 펼쳤다. 이에 편승해서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은 물론, 교회와 성도들까지 여야로 갈라져서 설왕설래하는 형국을 보았다. 우리나라 국민들만큼 정치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드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정치뿐인가?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축구나 야구 경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국내외 선수들의 이름과 소속팀, 그리고 경기 일정과 순위까지 다 꿰고 있다. 그 정도라면 과연 ‘극성’이라는 말을 들을만도 한데, 우리나라에선 그 정도쯤은 기본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과거 어떤 대통령이 국민들의 이목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고 정책적으로 프로팀을 창단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럴 법도 하겠다는 생각이다. 우리 국민들은 그렇게 길들어져 왔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사회적 이슈가 뜨면 목숨을 걸고 편을 갈라서 정쟁에 편승한다. 어느 한쪽에든지 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여겨 왔다. 이번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우리는 또 다시 찬반양론에 휩싸여서 눈을 부릅뜨고 후보자의 기자 회견과 청문회를 지켜보았다. 그동안 필자가 속해 있는 수많은 SNS(사회관계망 서비스) 단체대화방에서도 마치 자기들이 당사자들인 것처럼 찬반양론으로 팽팽하게 맞서면서 급기야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극단적인 대치를 하면서 사는 것일까? 공격하는 창이나 방어하는 방패나 다 허점은 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자기들만의 가장 날카로운 창과 가장 완벽한 방패를 과시하면서 그것들을 행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마치 자기들의 공격과 방어로 자신들의 운명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그럴까? 이번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만 보더라도 누가 이겼다고 보기 어렵다. 그 어떤 누구도 예리한 창으로 완벽하게 상대방을 제압했다거나, 튼튼한 방패로 자신을 완벽하게 보호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창과 방패를 빗대서 모순(矛盾)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하지 않던가? 옛날 중국 초나라에 창(모:矛)과 방패(순:盾)를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자기가 파는 창과 방패는 최고의 상품이라고 선전했다. “내가 파는 창은 이 세상의 어떤 방패라도 다 뚫을 수 있소! 그리고 내가 파는 이 방패는 그 어떤 창이라도 다 막아낼 수 있소!”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구경꾼이 이렇게 말했다. “그럼, 당신의 창으로 당신의 방패를 뚫는다면 어찌 되겠소?” 누구나 자신의 완벽함을 자랑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타인의 결점을 들춰내는 사람도,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는 사람도 결국 모순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럴 바에야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윈윈(win-win)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어차피 세상은 내가 심판할 수 없는 것이고, 결국엔 나도 언젠가는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우리가 불의한 존재이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의 흠을 캐내려고 혈안(血眼)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남의 흠이 보이는 것만큼, 아니 그 보다 더 많은 흠이 자기에게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지적을 받았을 때에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성찰해 보아야 한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고, 숙인 고개에 칼 못 대는 법 아니겠는가? 필자는 두 아들을 키우면서 기도해 온 것이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큰 아들에게는 통일 대한민국의 첫 번째 국무총리가 되라고 축복하며 기도를 해 주었다. 둘째 아들에게는 나라와 국민들을 살리는 깨끗하고 정직한 기업가가 되라고 축복하는 기도를 해 왔다. 세상을 살면서 때 묻지 않고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구정물에 떠다니면서도 물방울을 묻히지 않는 오리를 보면서 신기함과 부러움을 가져 본다. 2700년 전에 이사야라는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다. “장차 마지막 날에 평화의 왕이 오시면 창과 칼들이 쓸데없게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창과 칼들을 녹여서 낫과 보습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 어디 창과 칼뿐이겠는가? 그 날이 오면 방패도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쓸데없는 자기변명이나 과도한 자기 보호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끊임없는 창과 방패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행여 남의 결점이 보이거든 굳이 창을 들고 공격하려 하지 말 것이다. 누구에겐가 공격을 받게 되거든 방패를 들고 방어하려고도 하지 말 것이다. 이미 하나님은 당신을 잘 알고 게시기 때문이다. 그 분은 우리들의 발걸음을 다 세시고, 우리들의 머리카락조차 다 헤아리시는 분이시다. 무모한 창과 방패의 대결이 얼마나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지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 그렇게 요란하던 제13호 태풍 링링도 조용히 사라지고 마는 것을 보라! 우리는 그저 추석 대목을 맞아 들뜬 분위기 속에서 또 그렇게 마지막 시간을 향해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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