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 명절 추석이 다가 왔네요. 추석을 ‘한가위’라고도 하더군요. “더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도 있듯이 추석은 풍요로운 명절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계절~ 오곡 백과 풍성하고 수확의 기쁨을 맛보며, 허리를 펼 수 있는 시기가 또한 추석인 것 같아요. 사극 드라마를 통해 보면 한국은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가난하고 배고픈 시대였고 연세 있으신 할머니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분들 젊은 시절에는 배고픔은 예삿일이었다고들 하시더군요. 가난과 배고픔... 수많은 전쟁을 치른 나라... 동네 할머니들 이야기로는 6.25전쟁이 끝나고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먹을 게 없을 때 미국 등 다른 나라로부터 밀가루를 지원 받아 연명을 한 시기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80년대 이전까지도 보통의 시골집들은 쌀을 빌려서 먹거나 학교 다니는 아이들 학용품값이 없어 돈을 빌리는 일도 허다했다고 하더군요. 신발은 고무신을 신고 다니고 밥도 쌀이 귀해서 보리밥을 먹거나 혹은 보리를 섞은 밥을 먹었다고 합니다. 특히 우유나 라면은 귀한 음식이었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그렇게 귀하지는 않은 고기와 과일도 그 당시엔 평소 구경하기조차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추석은 먹을 음식도 많고 아이들 새옷도 사주기도 하여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무척 기다려지던 추억이 많다고 하네요. 어제는 비도 오고 점심때 무얼 해 먹을까 고민하다가 수제비를 해 먹었는데 남편이 수제비를 먹으면서 하는 이야기가 “어릴때만 해도 수제비는 무척 자주 해 먹던 음식”이라고 하네요. 시아버지가 방앗간을 해서 남편은 시골에서는 밥을 굶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워낙 가난한 시절이어서 수제비에 고구마를 넣은 점심을 수시로 먹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왜 있는지 알 것도 같네요. 아이 둘 아침밥을 챙겨 먹여 학교에 보내고 세탁기로 밀린 빨래를 하고 이곳 저곳 청소를 하고 나니 벌써 10시가 훌쩍 지나 버렸네요. 네팔로 돌아갔던 큰오빠가 다시 한국으로 온다고 하네요. 한국에서의 일이 힘들어 다신 오지 않겠다고 하면서 갔지만 막상 네팔에 가서 돈을 벌어보니 한국에서와 비교가 되나 봅니다. 큰오빠의 딸(저의 조카)이 거창으로 시집 와 자기 아빠를 초청하는 형식이어서 부모에 대한 초청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 한국에 오고 가는 것은 무난할 듯 싶더라고요. 한국에 와서 한국 음식을 배우고 두 아이를 낳고, 대회에 나가 상을 받고, TV에 주인공으로 나오기도 하였지만 한 가지 꼭 하고 싶은 게 남았는데 그게 참 잘 안되네요. 한국으로 시집와 아버지 초청을 한번 하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네요. 딸자식 부담될까봐 매번 오지 않는다고 하시는 아버지. 사실 부모님 두 분 왕복 항공비가 240만원 정도이니 체류비에 이동비 등 만만치는 않답니다. 이번에 경남도에서 비용 부담하여 가족초청을 해 준다고 하여 오시겠냐고 했더니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오신다고 하셨는데. 정작 함양군에서 추천대상에 선정되지 못해 그것도 하지 못하게 되어 허탈하네요. 추석을 맞이하여 한국에 부모님이 오신다면 저에게는 정말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더욱 의미 있을텐데 말이에요~^^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추석이 다가 오네요. 엊그제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밤. 남편은 약 6000평의 밤산의 풀을 모두 베고 저는 약 1000여평의 밭에 무를 다 심었답니다. 이제부터 또 열심히 밤을 줍고, 소비자분들에게 저희집 밤을 보내 드려야 할 것 같아요. 매년 품절되어 인기가 좋은 저희집 밤을 찾아 주시는 전국의 소비자님들, 그리고 주간함양 독자님들, 항상 고맙습니다. 풍성하고 행복한 추석 보내세요.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