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대기실에서 진료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삐융삐융 소리와 함께 119 구급차가 응급실로 황급히 들어왔다. 환자가 실려 나오고 작은 응급실은 분주한 사람들로 가득찼다. 병원은 항상 알지 못할 위태로움과 불안으로 맥박을 빠르게 뛰게 한다.
십여 개의 침대 병상이 환자로 가득 차 나는 벽 따라 놓여있는 간이 의자에 앉아 링거를 맞아야 했다. 나머지 십여명의 환자가 침대가 없어 나처럼 의자에 앉아서 링거를 2, 3시간 맞아야 하다니 어처구니없다. 나는 증세가 심하지 않아 그렇다 해도 고통받는 환자는 오히려 고통을 더하는 시간이다. 환자의 기본 권리가 무시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 연세가 많은 분들이 누워 있는 주사실 광경을 보며 나는 생로병사 고집멸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아있음은 무엇이며 아프고 늙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인생 수수께끼의 난제에 나는 링거의 떨어지는 수액을 한방울 두방울 세고 있었다. 똑 똑 똑.
얼마 전 두 편의 다큐를 보았다. 한 편은 외상중증센터의 설립과 닥터 헬기의 도입을 강력히 주장했던 이국종교수의〈중증 외상센터 25시〉다큐이고, 또 한 편은 인생극장에 방영 된〈길 위의 닥터〉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분초를 다투는 위급 환자들이 마땅한 병원을 찾지 못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 길 위에서 죽는다. 중증환자를 받아줄만한 병원이 없다. 그래서 이국종 교수는 권역별로 중증외상센터의 건립이 시급하다고 외친다. 더구나 사고현장에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이 있는데 닥터헬기야말로 바로 응급실이자 수술실이라는 것이다. 이 닥터헬기의 도입을 수년동안 외쳤지만 누구하나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국회에서 울먹이며 외친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오지를 찾아다니며 13년 동안 5만명을 진료한 이재훈 외과의사와 그의 아내 박재연 부부의 일상을 다룬 다큐가 〈길 위의 닥터〉이다. 그들이 주민들로부터 환영과 존경을 받는 것은 의술뿐만 아니라 그들과 같이 하는 인술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같이 아파하고 같이 즐거워한다.
얼마 전 아내가 진주의 한 병원을 갔다 와 투덜거렸다. “두 시간을 기다려 의사와 단 3분 이야기 했어요. 의사는 환자인 내 말은 아예 들으려 하지 않았어요. 기막힌 것은 병에 대한 것을 묻자 자세히 알려면 인터넷을 찾아보면 다 나와 있으니 집에 가서 찾아보라는 것이었어요. 또 진료 처방이라는 종잇장 하나를 뽑아 형광펜으로 밑줄을 몇 개 긋고 밖에 간호원이 다 설명을 해줄테니 나가보라는 것이었어요. 그게 진료 전부였어요”
함양에 병원이 하나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 하나마저 없다면 이 많은 환자들은 어디에서 헤맬 것인가. 침대는커녕 이 의자마저 없다면 링거를 어디에서 맞을 것인가? 그런데 함양에 있는 병원이 애처롭게도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 없이 그대로라는 사실이다. 시설이 열악하기 그지없다. 병원은 항상 만원이고 시장통 같다. 병실이 없어 입원하지 못하고 통원치료를 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병원은 초와 분을 다투며 생명이 죽음으로 직결되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은 느리다.
나는 함양에 적어도 병원 하나쯤은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함양군은 닥터헬기는 아니더라도 병원의 증축이나 신설 또는 지원을 생각해보기라도 했을까? 위태로운 환자들의 현 실정을 알기라도 하는 것일까? 제대로 된 병원 하나 세워주면 나는 천번이라도 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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