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 분들에게 묻겠다. 3.1운동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인가? 아마 십중팔구는 유관순을 택할 것이다. 그럼 혹시 조인원이라는 사람을 아느냐 묻겠다. 이 분은 바로 유관순 열사가 참여했던, 천안 아우내 4.1 만세운동의 실질적 지휘관이다. 조인원 열사는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시절, 민주당의 대선후보였던 조병옥 선생의 부친이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 우리나라에서 조인원 열사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랴? 이 분은 천안 만세운동의 주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있다. 이 분에게 국가가 내린 명예란 건국훈장 최하위 등급인 애족장이다. 뭔가 이상한 점이 있지 않은가? 어째서 천안 만세운동의 지휘자인 조인원 열사는 최하위 건국훈장인 애족장을 수여받았는데, 솔직히 말해 만세운동의 수많은 참가자 중 한사람이었던 유관순 열사는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수여 받은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유관순 열사의 대한민국장 수여는 군중심리와 정치적 선동의 결과물이다. 유관순 열사는 본래 3등급인 독립장 수여자였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문재인 정부에서 유관순 열사의 건국훈장을 1등급으로 격상하는 결의안을 내어 그것이 실행되었다. 단숨에 독립장 수훈자가 대한민국장 수훈자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장 격상의 이유를 정부에서 밝혔는데 “광복 이후 3·1운동과 독립운동의 상징으로서 국민통합과 애국심 함양에 기여하고 비폭력·평화·민주·인권의 가치를 드높여 대한민국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데 기여하였다”는 근거를 들었다. 그런데 솔직히 저런 식의 논리를 내세우면 3.1운동 때 구금자였던 유관순보다 사망자인 7509명의 3.1운동 참여자에게 대한민국장을 주는 것이 더 맞아 들어간다. 현장 사망자 7509명은 대충 4~5등급 수훈이나 해주고 홍보는커녕 무관심으로 대응하면서 구금되고 3.1운동이 발발한지 1년 6개월 후에 옥중에서 사망한 유관순 열사는 대한민국장을 수여한다? 정치인들의 한심한 작태가 뻔히 드러난다.
유관순과 달리 만세운동 현장에서 사망한 유관순의 부모 유중권, 이소제 부부는 애국장(4등급)을 수여받았는데 이는 현장에서 만세운동 중 사망한 유공자보다 왜경에게 잡혀 옥살이 중 사망한 사람(유관순)에게 더 높은 훈장이 수여되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유관순의 오빠인 유우석은 2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3.1운동에 참여하고 원산, 강릉 등을 돌며 집회와 단체를 주관하며 유관순 못지않은, 아니 더 뛰어나다고 볼 수 있는 공적을 세웠다. 물론 기대조차 안하는 한심한 정부는 유우석에게 애국장(4등급)을 주었다. 유관순의 공적이 솔직히 저 셋을 3등급이나 앞설 급은 되지 않는다.
정부의 대중의 일반적 인식만을 고려한 행동은 오히려 순수한 독립운동가들을 모욕하고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결국 유관순의 사례에서 보듯, 정부의 건국훈장 추서 기준은 유명세와 일반적인 관심도라는 뜻이 되는데 이런 식이면 이게 과연 정당하고 명예로운 훈장인지, 아니면 더러운 정치세계의 추악한 작태인지 심히 의문이 드는 상황이다.
이는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한일관계가 악화일로인 데다 민족주의 계열과 유관순의 출생지인 충청 지역정치계가 오래 전부터 유관순 서훈 격상에 적극적인 면이 크다. 지지율을 방어해야 하는 정부와 대한민국의 모든 부조리를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존재에서 찾는 이들의 적폐청산-친일청산 요구가 맞물린 것도 있다. 이렇게 역사바로세우기와 민족기강이라는 명분에 취해 제도와 법률을 무시하는 것은 그들이 그렇게 비난하던 파시즘과 다를 게 없다.
나는 정말 이 글을 쓰다가 갑자기 뭔지 모를 분노에 너무 슬펐다. 정의로운 국가란 없으나 겉으로 만이라도 정의를 보여주거나 그러려는 시도조차 없는 대한민국이 너무나도 싫었다. 제발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격언의 참뜻을 정부가 알았으면 한다. 앞으로도 눈이 썩어 문드러질 개판 오분 전 상황의 삽질을 반복하면 정말 이러다간 자국혐오가 올까봐 미치겠다. 내가 진실로 말한다. 모든 권력의 몽환에 취한 자들이여, 쓸데없는 명목으로, 위인들을 가지고 정치질하지 마라. 그딴 식으로 행동했다간 국민들은 너희를 헌신짝처럼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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