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쯤 하다 보니 재미가 붙었어요. 전통시장이 어렵기는 하지만 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그동안 어머니 단골손님이 많았는데 이젠 제 단골손님도 제법 생겼어요.” 예전부터 쌀전이 형성돼 지금도 쌀전으로 불리는 함양읍 중앙시장길 13에는 50년이 넘은 함양지리산상회가 있다. 이곳에 터를 잡아 50여년 지리산상회를 지켜오던 주인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대신 새댁이 점포를 지키고 있다. 시어머니로부터 함양지리산상회를 이어받은 둘째 며느리 이유주(46) 씨다. 처음엔 많이 어색했는데 이제 이웃 어머니뻘 상인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낸다.이 씨는 3년 전 친언니의 소개로 지리산상회 둘째 아들(49)과 인연을 맺었다. 결혼에 관심이 없었다는 그는 대구에서 피부관리샵을 운영하고 있었고, 신랑은 화물운송업을 하면서 잡곡 도매업을 하던 어머니를 도우며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다. “피부미용기술이 있으니 결혼 후에도 샵을 계속할까하는 생각도 했다”는 그는 “시어머니(80)가 연세도 있으시고, 또 평생 일구신 점포를 닫는 것도 죄송하고 해서 점포를 물려받아 대(代)를 잇기로 했다”고 한다. 결혼 후 2년은 시어머니에게 일을 배우면서 함께 일했다. 1년 전부터 시어머니의 건강이 급격히 쇠약해져 점포를 도맡아 운영하고 있다. 혼자서도 척척 일을 해낸다. 그는 “잡곡 판매도 피부관리샵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 큰 어려움은 없다”면서 “이제는 손님들에게 영양성분이나 맛있게 먹는 방법도 이야기 해 줄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최근 블랙푸드의 제왕으로 떠오른 검정보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점포 안 선반에 있는 잡곡을 가리키며 “이게 블랙보린데 베타글루칸과 안토시아닌 성분이 풍부해 살짝 볶아 차로 마시면 다이어트와 피부미용, 당뇨병, 혈관질환, 탈모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면서 “아마 함양에서 검정보리를 판매하는 곳은 우리 가게뿐 일거라”며 어렵게 구했다고 했다. 함양지리산상회는 검정보리, 청보리, 찰흑미, 홍미, 녹두, 율무, 참깨, 검정참깨, 찰기장, 수수, 귀리, 흑임자, 서리태, 쥐눈이콩, 팥, 누룩, 고추, 고사리 등 30여 가지를 취급하지만 이 것 외에도 “손님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구해 줄 수 있다”고 자신한다. 콩 종류는 주로 함양에서 생산하는 것을 판매하고 흑미, 홍미 등 다른 잡곡류는 호남에서 공급받고 있다. 대부분 국내산을 판매하고 있지만 간혹 가격이 저렴한 수입산을 찾는 손님도 있어 몇 가지는 수입산도 취급한다. “함양의 농산물 중에서는 팥의 인기가 으뜸이다”는 그는 “다른 지역 팥보다 단맛이 강해 가격이 비싼데도 팥빙수 가게나 팥죽 전문점 등에 수백 가마씩 공급하고 있다”고 했다. 함양지리산상회는 도매를 위주로 하다 6년 전부터 소매도 병행하고 있다. “50여년 전 시어머니가 처음 점포를 시작했을 때만해도 콩이나 잡곡을 직접 사 와서 도매로 넘기다 보니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며 시어머니와 주변 상인들에게 전해들은 고생담을 들려줬다. “주로 봄에는 고사리, 여름은 고추와 강낭콩, 가을엔 흰콩과 백태(메주콩) 등을 사들이기 위해 마천이나 백전 등 함양 관내는 물론, 남원, 인월, 산청 등을 돌며 수십리 길을 이고지고 왔던 때도 있었다”고 했다. “그 때 비하면 요즘은 차도 있고 화물이나 택배도 있어 좋은 물건을 구입해 합리적인 가격에 팔면 되니까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많이 줄었다. 대신 요즘은 워낙 온라인 마케팅이 치열하다보니 어려운 점도 많다”고 했다. 그는 젊은 세대답게 그동안은 오프라인에서만 거래했던 것에서 벗어나 온라인 마케팅을 병행하기 위한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이유주 씨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잡곡 도매업으로 7남매를 키우셨다. 시아버지는 60대에 돌아가셔서 시어머니가 혼자 고생을 많이 하셨다”며 시댁 식구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함양지리산상회를 오래오래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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