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네는 왜 내 눈에만 보일까?” 아내가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리는데 나는 뭐라 할 말이 없다.
한번 거짓말을 하면 자꾸 하게 된다. 대꾸할 적당한 말이 생각이 안 나서 못 들은 척하고 있자니 속으로는 큭큭 웃음이 나온다.
조금 전에 현관에서 아내가 발견한 지네를 처리했다. 근데 지네는 신기하게도 자기 눈에만 띈다는 생각이 문득 든 모양이다. 만일 아내가 내 얼굴을 보며 정색을 하고 말했다면 대답이 궁해진 나는 얼굴이 시뻘개졌을 것이다. 대답은 뻔하다. 그동안 내 눈에 더 많이 보였던 지네는 예외 없이 아내 몰래 조용히 처리되었지만, 아내 눈에 먼저 띈 지네는 공개적으로 사망처리 되었기에 지네는 공식적으로 아내에게만 목격되는 것이다.
어제는 아내가 내 종아리에 부항 뜬 흔적을 보고 뭐냐고 물었다. 전날 아침 침대에서 지네에게 물린 자리다. 아내 몰래 부항으로 독을 뽑고 흔적을 안보이려고 나름 조심했는데 아내 눈에 띈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면 좋을 게 하나도 없겠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네는 쌍으로 다닌다는 말이 정말일까? 그저께 아침엔 지네가 침대에 출현하더니(내가 목격),오늘 저녁 늦은 시간에는 현관에 나타났다(아내 목격).
잠자리 들기 전에 데크에 있는 수리를 한 번 더 보겠다고 나갔던 아내가 현관에서 뭐라 뭐라 고함을 질렀는데 소리가 어찌나 다급하게 들리는지 나는 현관에 뱀이 들어온 줄 알았다. 읽던 책을 던지고 후다닥 쫒아가 보니 현관 구석에 지네가 한 마리 보였다. 대물은 아니었지만 손가락만한 놈이 현관 붙박이장 뒤로 숨어버리면 두고두고 걱정거리가 될 수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신발을 신고 밟아버렸으면 간단한 것을 당황해서 막대기 같은 걸로 찍어야 된다는 생각만 들었다.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주방으로 달려가 손에 잡히는 대로 밥주걱을 가지고 와서 콱콱 누르는데 한두 번에 제압이 안 되고 지네가 비실거리며 도망간다. 아내는 때려잡을 걸 가져와야지 왜 밥 푸는 주걱을 가져왔냐고 한다. 좋은 질문이었지만 너무 어려웠고 나도 그게 막 궁금하던 차였다. 대답을 못하고 있으니 아내가 간이 신발장에서 구두주걱을 집어준다. 나는 쌍주걱을 휘둘러 겨우 상황을 장악할 수 있었다.
요즘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진 아내는 마당에서 키우는 수리를 실내에서 키우고 싶어 한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반대하는데 아내는 고양이가 실내에 있으면 지네 같은 벌레를 퇴치할 수 있다고 한다. 지난 가을 겨울을 실내에서 키우다가 금년 봄에 마당으로 내보내진 수리도 기회만 있으면 실내로 들어오려고 한다. 가끔 문이 열려있는 틈을 타서 수리는 잽싸게 방으로 들어오고 침대 밑으로 숨어들어가 버틴다. 아내는 그걸 보고 귀엽다는 듯 웃기만하고 내보낼 생각을 않는다. 아내와 수리의 이해관계가 猫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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