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아내 몰래 쓴다. 아내가 보면 절대 안 되는 글이라서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아내를 의식하며 조심스레 자판을 두드린다. “아침부터 무슨 글을 쓰는데?” 하고 아내가 느닷없이 다가올 리는 없지만 조심할 필요는 있다. 어제부터 내린 장마에 태풍이 겹쳐 앞마당에는 빗물이 도랑이 되고 바람도 점점 세어져 돌담아래 뽕나무 고목이 휘청거린다. 화단에 세력 좋던 다알리아는 모두 드러누웠다.
내가 쓰는 글은 모두 카스 채널이나 페북, 밴드에 올린다. 하지만 오늘 쓴 글을 나는 내가 운영하는 카스채널 <지리산농부>에는 올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아내가 소식받기를 통하여 내가 올리는 글을 보기 때문이다. 페북이나 밴드는 괜찮다. 아내가 보지 않는다.
요즘 나는 선물로 받은 성능 좋은 해드폰으로 말러나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듣는데 푹 빠져있다. 어제도 밤늦게까지 해드폰을 끼고 말러 교향곡(2,5,7번)을 듣다 자정을 넘기고 침대로 갔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밤새 한 번도 깨지 않고 숙면했다. 그런데 아침에 다리가 따끔해서 잠이 깨었다. (모기가 이불 속까지 들어왔나 보다....) 나는 괘씸한 모기를 때려잡고 좀 더 잘 생각으로 이불을 걷었는데 모기가 아닌 지네가 허벅지 위에 올라가서 나를 물어뜯고 있다. 바늘에 찔린 듯 찌릿한 통증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손가락으로 일단 탁 튕겨내고 손에 잡히는 대로 아내의 경대에서 볼펜 한 자루와 연필 한 자루를 가져와 지네를 잡으려고 하는데 이게 연필과 볼펜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근데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지네를 아내 몰래 잡아 처리해야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아내는 반대로 돌아 누워있어 내가 소동을 부리지 않고 잘 처리하면 아내 모르게 넘어갈 수도 있다. 만일 아내가 (아침부터 침대에서 왜 이리 부시럭 거려~잠도 못 자게~)하고 돌아누우면 큰일이다. “지네가 침대에 올라왔어~” 하면 아내는 비명을 지를 것이고 그 충격으로 지붕이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후유증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만일 아내가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아내는 다시는 침대에서 편안하게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나는 볼펜과 연필로 지네를 집어 보려는 바보 같은 짓을 몇 번 더 시도하다가 지네가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바람에 포기했다. 주방에 고기 구울 때 쓰는 집게가 딱인데 내가 주방에 가는 동안 지네가 숨어버리거나 아내를 물 수도 있을 것이다. 다급한 순간에 천재적인 지혜가 떠올랐다. 어제 밤은 장맛비로 창을 모두 닫고 자는 바람에 더워서 옷을 하나만 입고 잤는데 나는 그 마지막 옷을 벗어 지네를 싸발라 거실로 옮길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지네가 아내가 아닌 나를 물었다는 것이다. 지난달에는 화장실에 거짓말 좀 보태면 뱀만한 왕지네가 들어왔다. 그것도 다행히 내 눈에 먼저 띄어 아내 몰래 조용히 처리할 수 있었다.시골에 살면 말벌에 쏘일 수도 있고 지네에 물릴 수도 있다. 운이 안 좋으면 뱀에 물릴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해독제를 상비약으로 준비해 둔다. 도발한 지네에게 더 큰 피해가 돌아가게끔 보복한 나는 말벌에게 쏘이면 먹는 알약을 먹었다. 이미 부어오르기 시작한 오른 쪽 종아리와 왼쪽 허벅지에 사혈침을 찌르고 부항을 붙여 피를 뽑았다. 그리고 오소리 기름을 발랐다. 아내는 고맙게도 내가 응급처치를 다 하고 부항을 붙인 자리를 들키지 않게 긴 바지 입고 모닝커피를 마실 때까지 침대에서 나오지 않더니, 수리가 창밖에서 냐옹~ (아침 먹고 싶다)하자 “아~ 잘 잤다~”하며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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