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산업화과정에 참여했던 기성세대들에게는 기술력과 부품,소재산업에 대한 일본에의 의존은 “경제적 식민지”라고 자조했을 정도로 극복 불가능한 과제였다. 정말 열심히 일해서 우리 대한민국이 이 불가능을 뛰어넘어 모든 산업분야에서 일본과 분업하고 경쟁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연 일본은 수입도 아닌 “수출규제”라는 칼을 빼들었다.
아베 신조의 경제보복이 국내정치용인지, 트럼프 흉내 내기로 한국을 견제하려는 것인지 또는 한반도 평화 가능성에 대한 위기감 때문인지 해석이 분분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수단은 노골적이고 목적도 분명해 보인다.
오랜 동안 일본은 한국을 강점하여 수탈하고 분단과 전쟁을 이용하고 산업화과정에 관여하면서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취해왔다. 지난해만 해도 한국은 전 세계 230개국과의 무역을 통해 700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대일무역에서는 적자액이 240억 달러에 달하고 일본을 방문한 관광객 수도 754만 명으로 중국(832만명에)이어 2위를 기록하는 “봉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음에도 알량한 산업적 우위를 내세워 “이웃나라”를 핍박하는 행태는 뻔뻔하고 시대착오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자유무역시대의 분업체계 속에서 힘의 우위를 시험하려는 일본의 의도가 성공할지도 의문이고 우리정부도 그리 호락호락 물러설 기세가 아니어서 가뜩이나 힘겨운 경제사정이 더 악화되지 않을지 국민들은 걱정하고 있다.
정작 안타까운 것은 신문, 방송을 통해 드러나는 우리 내부의 분열상?이다. 마치 아베의 목적이 한국의 국론분열과 혼란을 의도한 것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외교,경제적 해결보다 사활을 건 듯 한 여야의 대치가 더 심각해 보이고 과열된 정치권 안팎의 논쟁은 결국은 삼전도의 굴욕으로 마감된 병자호란때의 척화파와 주화파 대결의 데자뷰(旣視感) 마저 느끼게 한다.
망해 버린 명을 섬길 것인가 청을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로 20년을 당쟁으로 보내다가 병자호란을 초래하고,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가서도 주전론자 김상헌은 끝까지 싸울 것을 고집하고 주화파 최명길은 강화론을 펼치며 대립한다. 결국 최명길이 항복문서를 만들어 인조의 재가를 받았는데 김상헌이 이 문서를 찢어 버리자 최명길은 “조정에 이 문서를 찢어버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또한 나같은 사람도 없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조선판 보수 VS 진보’의 진검승부였고 조선시대의 정치가였던 사대부들은 정치권력을 두고 이런 ‘싸움’을 많이 했다. 소매를 걷어 붙이고 먹을 갈아 일필휘지하는 ‘붓의 전쟁’이기는 했지만, 과정과 결과는 어떤 전쟁 못지않게 처절했는데 일제의 식민사관은 이를 민족의 당파성 때문이라고 폄훼하여 비웃었다.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였다. 士大夫는 성리학을 배경으로 한 정치력을 갖춘 사회지도층으로 오늘날 한국사회를 이끌고 있는 정치인, 학자, 문,무관료, 그리고 방송을 잘하고 활용하는 예비정치인-소위 論客들도 이에 해당한다.
소위 기해왜란으로 불리는 일본의 경제적 침략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를 놓고 “우리 사대부들”이 들고 나섰다.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 법이라지만 이는 사무라이의 나라인 일본에나 해당되는 말일 터, 옳다는 일은 어떤 경우도 고집을 꺽지 않는 士林의 후예, 사대부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관철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백성을 위하는 길이라 믿고 있으니 어찌할 것인가?당연히 사대부와 事大主義者는 전혀 연관이 없으니 진정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나라가 조금 거덜이 나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더라도 피터지고 처절하게 싸우시라.
다만, 조선조나 지금이나 사대부는 그대로지만 붕당정치에서 환국(換局)을 결정하는 주권자는 임금이 아니라 민주시민이라는 것이 다행스럽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당파싸움”이라는 말은 낯선 단어다. 민주화가된 90년대부터 학교에서는 붕당정치(朋黨政治)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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