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 두 번 먹는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두 끼 먹는다. 그러니 저녁을 먹으면 그날 먹을 건 다 먹는 거다. 나는 한참 자라고 있는 거세묘라 식욕이 왕성해서 먹는 건 절대 사양하지 않는다. 오늘은 저녁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릇에 고등어 통조림이 또 나왔다. 나는 후식인가보다 하고 우적우적 먹다가 집사부부가 유난스레 아양을 떨고 살금살금 발끝으로 걸으며 키득키득거리는 것이 어쩐지 이상해서 뒤돌아 보았더니 나 몰래 산책을 나서고 있었다. 나는 밥그릇을 걷어차고 후다닥 쫒아갔다. 거세묘(去勢猫)는 터프하고 거센 고양이라는 뜻이다. 딸랑딸랑 쌍방울을 거세하고 나면 거센 고양이가 되어 모험심이 강해진다. 내가 큰 뜻을 품은 모험가라고 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호기심 많은 냥이다. 나는 이제부터 집사를 데리고 산책이라는 이름의 탐구여행을 하려는 것이다. 냥작으로서의 체통을 생각한다면 집사가 모는 마차라도 타고 가는 게 마땅하겠지만 고갯길이 워낙 험하다보니 유감스럽지만 걸어갈 수밖에 없다. 내가 이 여행에 집사를 데리고 가는 이유는 나랑 사이가 좋지 않은 이웃 개들 때문이다. 이 친구들은 말이 안 통한다. 내가 냐옹~하면 컹컹하고 동문서답 한다. 좀 똘똘해 보이는 진도개도 내가 냐옹~하면 월월~하며 말인지 빵군지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대기만 한다. 한번은 덩치가 멧돼지만한 시베리안허스키에게 “멍멍아~야옹해봐~”했더니 (너 맛좀 볼래) 하며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나를 함부로 대하는 녀석들도 집사에게는 꼬리 친다. 천박하게 꼬리를 흔들고 어떤 놈은 아예 엉덩이를 흔든다. 아이러니 하지만 이것이 내가 그들의 영역을 지나갈 때 집사를 대동하는 이유다. 만일 이게 영화고 만화라면 나는 ‘장화신은 고양이’가 되어 허리에 칼을 차고 개들을 호령하며 지나가겠지만 삶은 현실이고 꿈이 아니다. 강호는 험한 곳이다. 집사의 협조로 개들의 영역을 무사히 지나고 강둑길을 걷게 되었는데 뜻밖에 나는 새로운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엄천강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이 소리를 질러대는 거다. 집사에게 들은 전설에 따르면 엄천강에는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고 그 중 한 마리는 눈이 멀었는데, 그 눈 먼 용이 울 때마다 비가 온다고 한다. 물론 내가 그 전설을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 비가 그쳤는데도 용이 우는 듯한 소리가 나니 사실 여부를 떠나서 나는 이만저만 겁이 나는 게 아니다. 일단 나는 덤불 속으로 피신했다. 나는 안절부절했다. 나는 나의 캐슬에서 너무 멀리까지 걸어왔고 언제 나를 공격할지 모르는 엄천강 눈 먼 용 때문에 똥이 마려웠다. 집사에게 마차라도 타고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갑자기 마차를 준비할 수 없는 난감한 처지의 집사는 나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용기를 주려고 애를 썼고 박수를 치며 응원을 했다. 하지만 나는 슬픈 얼굴로 마차 비슷한 거라도 가지고 오던지 아니면 여기서 하루 묵어가겠다고 했다. 난감해진 집사는 준비를 해오지 않아 묵어갈 수는 없다며 그 대신 직접 마차가 되겠다고 자청했다. 참으로 충직하고 친절하고 사려깊은 집사다. 나는 그의 가슴에 마차처럼 타며 고마움의 표시로 냐옹냐옹 노래를 불러주었다. 게세묘는 거세기도 하지만 뚱냥이기도 해서 집사의 숨소리가 거칠어질 때는 살짝 미안하기도 했다. 캐슬로 가는 마지막 오르막길에서 집사가 헐떡거리며 뭔가 거친 소리를 내뱉기도 했지만 나는 못들은 척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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