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내리더니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합니다. 뙤약볕보다 더한 양파 가격 파동에 속이 탈대로 탄 농부들이 엎드려있던 들판에도 어느새 새파란 벼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휴대전화 이어폰에서는 은혜와 관련된 노래들이 흘러나옵니다. 노래 가사에 큰 의미를 주지 않다가 오늘 아침 ‘나의 달려갈 길 다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 나의 나 된 것은 다 은혜라.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은혜’라는 가사가 귀에 꽂힙니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넘기고도 여전히 치기(稚氣)어린 젊은 날의 성질들이 남아있지만 지금의 내 모습이 있기까지 은혜(恩惠)를 베푼 이들을 생각해봅니다. 험난한 인생길을 살아 오시면서도 당신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서 아침저녁으로 무릎 꿇고 기도하신 우리 어머니를 기억하며 감사합니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성격이 달라 무던히도 다투었지만 인내하고 끝까지 기다려주고 이제는 내편이 되어 든든하게 지지해주는 아내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아빠를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하며 든든하게 여기는 우리 아들딸들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형, 오빠를 진정 존경하며,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하며, 장남의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든든하게 내 편이 되어 주는 동생들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사위를 위해서 새벽기도 때마다 기도해주시고 이제 아버지 어머니의 역할을 감당해주시는 장인 장모님이 계심에 감사합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다그치기도 하지만 선생으로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랑스런 제자들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이 모든 이들이 베풀어 주는 은혜로 지금의 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학생들과 은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초보은(結草報恩)과 배은망덕(背恩忘德)에 대하여 이야기 했습니다. 중국 진나라 때 아버지의 순장(殉葬) 유언을 어기고 서모를 개과(改嫁)시킨 위과가 장수로 싸움터에 나가 전투 중 적의 장수 두회(杜回)에게 사로잡힐 위기에 처하자 한 노인(위과가 개과시킨 서모의 아버지)이 두회의 발 앞에 풀을 엮어 두회를 넘어지게 해 오히려 위과가 두회를 사로잡아 공을 세웠다는 고사와 관련한 결초보은(結草報恩)을 같이 배웠습니다. 반대말로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背恩忘德)도 같이 배웠습니다. 며칠 전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데 아내가 철저하게 내편이 되어주고 나를 위로해주는 것을 보며 아내에게 “내가 결혼 하나는 끝내주게 한 것 같네. 정말 고마워” 라고 했더니, “당신이 잘못한 게 없는데도 부당하게 대우 받는데 당신을 편들고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지”하며 저를 위로해주었습니다. 지금의 나의 나 된 것은 힘든 상황에서도 기다려주고 이렇게 저를 이해하고 품어주고 격려해주는 조강지처(糟糠之妻) 아내의 은혜 덕분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내의 소중함을 더욱 느낍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 중에 나이가 든 여자가 필요한 다섯 가지는 첫째 딸, 둘째 돈, 셋째 건강, 넷째 친구, 다섯째는 찜질방이고, 나이가 든 남자가 필요한 다섯 가지는 첫째 아내, 둘째 마누라, 셋째 애들 엄마, 넷째 집사람, 다섯째가 와이프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남자들은 나이 들수록 아내 없이는 제대로 못 사는가봅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고요. 나이 들어 괄시받지 않도록 아내의 은혜(?)에 늘 감사하며 살고 아내의 뒤통수치는 배은망덕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나에게 있는 은혜에 감사합니다. 나에게 은혜 베푼 이들 고맙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은혜입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염려하고 아껴주는 이들로 인하여 내 은혜가 족(足)합니다. 내 은혜의 잔이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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