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거실 소파를 새 걸로 바꾸고 싶다고 한다. 17년 전 귀농해서 살림집을 막 짓고 새로 산 것인데 천으로 만든 것임을 감안하면 오래 쓰긴 했다. 언제부턴가 소파가 푹푹 꺼져 소파 아래에 못 쓰는 이불을 받쳐 넣고 사용해왔고 지난해에는 합판을 재단하여 보수까지 했지만 여전히 편하지는 않다. 애초에 돈을 더 주더라도 튼튼한 걸 샀더라면 좋았을 텐데 소파가 꺼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설상가상 지난 가을에 우리 가족이 된 길냥이 수리는 소파를 부분적으로 너덜거리게 만들었다. 발톱을 날카롭게 벼리고 싶은 수리가 수시로 소파를 스크래치 했는데 아내는 적극적으로 제지도 하지 않았다. 아마 다른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아내와 수리가 소파를 새 걸로 바꾸려고 공모를 했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 이해관계는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어쨌든 요즘 아내는 인터넷으로 소파를 보고 있다. 어깨너머로 슬쩍 보니 가격이 만만찮다. 애초에 돈을 더 주더라도 튼튼한 것을 사는 게 좋다는 내 생각은 이제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진도6이면 생각이 무너지는 강도다.
꺼지는 건 소파 뿐만이 아니어서 지난달에는 침대 매트리스를 새 걸로 바꿨다. 침대도 17년 전에 소파랑 같이 구입한 건데 매트리스가 꺼져 역시 못 쓰는 이불을 받쳐 넣고 버텨왔다. 하지만 자고나면 허리가 안 좋아 매트리스는 새 걸로 바꾸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살림을 한 번씩은 다 바꾼 것 같다. 작년에 전자레인지와 세탁기를 바꿨고 올해는 냉장고랑 김치냉장고를 새로 들이고 가스레인지를 버리고 인덕션을 설치했다. 전자레인지는 30년 가까이 사용해오던 거다. 잘 돌아가던 전자레인지가 어느 날 갑자기 전원이 안 들어와 제조업체에 연락을 했더니 오래 사용한 거라 수리해도 또 고장 날 수가 있다고 한다. 새 걸로 사라고 권하는 거다. 그런가 하고 새로 구입했다. 세탁기는 20년이 안 된 건데 고장이 나서 AS를 불렀더니 같은 말을 한다. 주요부품이 고장났다, 내구연한이 지났다. 수리비가 9만원 정도 들어간다, 연식이 있어서 다른 곳에 또 고장이 날 수 있다, 꼭 수리를 원하면 해 줄 수는 있다. 잘 판단해라(새 걸로 구입하라).
사실 나는 바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올 봄에 아내가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가스레인지를 모두 바꾸겠다고 했을 때 나는 발바닥이 다 오그라들었다. 아직 쓸 만한데 왜 바꾸냐고 고장나서 못쓸 때까지는 써야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하지만 실상은 20년 가까이 된 것들이라 고장이 잦았다. 냉장고는 하단에 있는 야채 칸에 물이 한 번씩 고여 그 때마다 AS를 불러 수리를 했고, 가스레인지는 노즐이 막혀 반은 고장이었고 작동이 되는 불판도 조심조심 쓰고 있었다. 특히 점화할 때 따따따따 소리가 나며 됐다가 안 되었다가 오락가락했다. 가스라 불안하기도 해서 요즘 대세라는 인덕션이라는 걸로 바꿨다. 더 이상 아내의 신임을 받지 못하는 스무살짜리 냉장고와 김치냉장고도 새 모델에게 자리를 내주고 곶감 작업장 한켠으로 밀려났다. 사실 버려야 하는 것들인데 부둥켜안고 있다. 시골에는 농산물을 박스채로 보관할 일이 많아 세컨드 냉장고로 쓰려는 거다. 가령 가을에 단감을 수확해서 냉장고에 가득 넣어두면 단단하고 아삭한 단감을 겨우내 먹을 수 있다.
어쨌든 아내가 연식이 오래된 것들을 새 걸로 바꾸겠다는데 내가 아무리 바꾸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한계가 있다. 나는 다만 아내가 연식이 오래되고 상태도 별로 안 좋은 남편을 바꾸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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