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유교대학(학장 신정근)은 지난 6월 25일 1기 졸업 학술답사를 김득신묘, 김득신 쉽터, 충민사, 취묵당, 외암마을 김태균 함양향교 전교, 이옥수 안의향교 전교, 졸업생과 유림 70여명이 다녀왔다이날 아침 8시에 서춘수 함양군수의 일일이 인사를 받고 출발했다, 신정근 학장과 김미영 박사가 충북 증평읍 율리마을에서 만났다, 김미영 박사의 인솔로 율리마을 뒷 산 김득신묘는 신정근 학장, 괴산군 괴산읍 충민사와 취묵당은 이하성 해설사,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마을은 이연숙 해설사가 안내했다. 김득신(1604-1684)은 진주대첩 김시민 장군의 손자이자 부제학 김치의 아들로 본관은 안동, 호는 백곡이다, 어려서 천연두를 앓고 난 후 우둔해 져 10살되어 글을 깨칠 수 있었다
우둔하여 책을 읽어도 기억이 없어 아버지는 “ 읽고 읽으면 반드시 대문장가 된다”고 하였다. 사기, 백이전을 1억1만 3천번을 읽었고, 다른책도 1만번 이상을 읽었다고 한다.
39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다시 59세에 문과 급제하여 성균관에 입학해 벼슬길에 나선다, 김득신은 자신의 묘비에 글을 지었는데 쓰인 글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재주가 남만 못 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마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름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따름이다.“충민사는 진주대첩에서 싸운 김시민장군의 사당으로 충북 문화재12호이다 외삼문(선무문), 내삼문 충민사, 묘로 되어 있다외암마을은 설화산(雪華山) 기슭 경사지에 위치하며 이정이 이주해 오면서 예안 이씨가 대대로 살기 시작했다. 이정의 6대손인 이간이 호를 ‘외암’이라 지었다 한다, 영암댁· 참판댁· 송화댁 등은 벼슬했다고 이름 붙였다, 50여 가구의 초가 등 크고 작은 옛집들이 상당부분 원래모습을 유지한 채 남아 있다. 15세에 사별했다가 90여세에 합장한 묘, 600년된 나무와 돌담으로 연결된 골목길, 주변의 울창한 수림이 마을의 경관을 더욱 고풍스럽게 하고 있다. 김태균 함양향교 전교는 ”학생들의 학구열이 대단하여 학술답사에 적극 참석하여 주니 감사하다, 더욱 2기 학생들에게도 모두의 성원을 바란다“고 말했다마장현 유교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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