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면 이전마을(2019년 6월 현재)♧ 안의면 이전리 소재♧ 세대 169가구♧ 인구 321명(남 142, 여 179)♧ 주요농·특산물 : 양파 ♧ 이장 : 김근열 정·관계에서 체육계까지 인재 배출의 요람 ‘안의면’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안음현’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안의면의 어르신들을 만나면 이 내용은 빠지지 않고 들을 수 있다. 그 만큼 ‘안의현’이었던 주민들의 자부심을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안음현은 안의·거창·함양 등의 일부지역이 포함된 옛 행정 구역이며 조선 태종이 이 곳 안의에 관아를 두고 중심지로 삼았던 곳이다. 그러나 영조 34년이던 1728년, 이 지역 출신 정희량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관군에게 진압돼 참수됐다. 이후 안음현은 사라지고 함양과 거창으로 나누어 예속시켰다고 한다. ‘정희량 사건’의 여파는 상당히 커서 안의는 이름조차 찾을 수 없는 곳이 돼 버렸는데, 일제시대 행정구역 개편으로 ‘안의면’이라는 이름을 다시 얻게 됐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안음현’ 조에는 “(이 지역 사람들은) 억세고 사나우며 다투고 싸움하기를 좋아 한다”고 쓰여 있다. 근래에도 사이에서는 “안의 송장 하나가 함양 산 사람 열을 당한다”는 말도 전해진다고 한다. 안의면 이전리는 안음현으로 불릴 당시 안의군 이전면이었다. 즉 지금의 이전·율림·장자동·동산 등을 관할했다. 이전마을은 현재 함양군 안의면 이전리의 한 단위마을을 구성하고 있다. 토질이 진흙이어서 비만 오면 온 마을길이 진흙탕으로 변해 질컥질컥했다고 해서 진 밭이라고부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마을에는 넓게 펼쳐진 밭이 이어져 있는데 이 곳을 ‘한들보’라 부르며 주로 벼와 양파농사를 짓는다. 마을의 보호수인 오리지나무는 옛 마을 주민들이 당산제를 지내는 곳이었다. 오리지 느티나무가 있는 봉을 4봉이라 부르는데 총 5개의 언덕(봉)이 한들보에서 국도변까지 나란히 솟아 있다. 안의의 상징인 밤숲(율림)이 이전마을 인근에 있어 예부터 마을 회치와 휴식, 야외체험활동 등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안의면의 보물 이전마을에안의 역사의 배경을 후손들이 증명이라도 하듯 이전마을 회관에는 축구, 씨름 등의 체육대회 상장과 트로피로 가득하다. 크기가 다양한 트로피만 나열해도 30여개나 된다. 수북이 쌓여있는 상장은 이 마을 사람들의 뛰어난 운동실력과 승부욕을 웅변해 주는듯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안의면민축구대회의 우승기이다. 한 때 이전마을 축구 대표로 출전했던 오장효(77‧관덕정 사두) 씨가 “이건 우리마을의 보물이자 안의면의 보물이다”며 천이 다 낡은 붉은색 우승기를 꺼내보였다.오 씨는 “안의 면민체육대회가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 되었는지 기록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마을에서 몇 년전에 이 축구대회 우승기가 발견되면서 면민체육대회의 오랜 전통을 알 수 있게 된 상당히 의미 있는 기입니다. 이 우승기는 3년 연속 우승을 했던 마을만이 영구보관 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만큼 우리 이전마을 사람들이 운동도 잘했지만 단합도 잘된다는 뜻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기는 안의중 제15회 동창회가 1972년 주최한 안의면민축구대회 우승기다. 김근열(52) 이전마을 이장은 당시 4살배기 어린아이였다고 한다. 축구공이 귀하던 시절 돼지 오줌보에 물을 채워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놀았다. 이 밖에도 짚을 똘똘 뭉쳐 둥글게 만들면 공이 됐다. 함께 공을 차던 학생들의 실력이 갈수록 늘어나 축구 잘하는 마을로 유명했다고 한다.활기 넘치는 마을회관넓은 한들보가 있는 이전마을은 6월 중순이면 양파 수확이 한창이다. 김근열 이장과 임고만(67) 부녀회장이 양파작업을 하다 본지 취재소식을 듣고 잠시 마을회관에 들렀다. 이전마을에는 젊은 김근열 이장을 중심으로 강행원 경로당 회장, 최재순 노모당 회장, 서기남(80) 노모당 총무, 임고만 부녀회장, 송종영 청년회장, 하영근 새마을지도자 등 조직이 탄탄하게 구성돼 있다. 이전마을회관은 다른 마을 회관과는 달리 회관 2층에 이장실, 회의실 등을 갖추고 있다. 정기 회의를 거쳐 투명하게 마을을 운영해 오고 있다는 것 또한 마을의 자랑거리이다. 오전 11시가 되자 어르신들이 하나 둘씩 회관으로 모였다. 얼마 전 검은머리로 염색하고 단장을 했다는 이영자(77) 씨, 오전 일을 마치고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시원하게 한잔 들이키는 오천석(83) 씨, 점심을 준비하는 도우미와 노모당 회원 등이 모이자 마을회관은 금방 어르신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마을의 분위기 메이커인 이옥수(72) 씨는 장난끼가 많아 ‘떠들이 할매’로 통한다. 강금분(84) 씨는 분위기를 한 층 돋아주는 옥수 동생이 오늘 회관에 나와 좋다며 손을 맞잡고 웃었다. 임고만 부녀회장은 20살 때 거창에서 이전마을로 시집와 40년째 이전마을 부녀회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주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며 멋진 포즈를 취해주는 여유를 부린다. 이전마을 출신 유명 인사들 노모회장의 남편이자 경로당 감사직을 맡고 있는 오장효 씨는 이날 취재진을 위해 마을 소개를 자처했다.그는 이전마을에는 공무원에서 체육인까지 많은 인물이 배출됐다고 했다. “함양의 유명인은 다 이전마을에서 나왔어요. 면장을 지낸 사람도 많았고요. 송 면장, 오 면장, 최 면장 두명 등 면장만 모두 6명은 될 거에요. 최완식 군수의 고향이 우리마을입니다.” 또 안의중학교를 설립한 오새벽이라는 사람이 이전마을의 ‘오부자’로 이름난 사람이었다. 오부자의 손자 오택훈 씨는 백전면장으로 퇴직 했다. 도의원을 지낸 송경영 씨도 있고, 축구 국가대표였던 최대식씨도 이 동네 사람이라며 자랑이 이어졌다.안의면 두항마을에서 시집 온 윤서분(83) 어르신은 자식들이 다들 공부를 잘하고 성공했다고 해 이전마을의 ‘복쟁이 할머니’로 불린다. 막내아들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농림식품부 고위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첫째 아들은 교장으로 퇴임했다고 한다. 현 안의농협조합장의 노모가 91세로 이전마을의 가장 고령자이다. 5개의 봉우리 ‘오봉(五峯)’ 봉이라 하면 주로 산에서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를 생각한다. 그러나 이전마을에는 큰 무덤 같은 봉우리 5개가 나란히 솟아있다. 봉우리를 끼고 논과 밭, 주택 등이 있지만 주민들은 이 봉우리를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에 따르면 이 오봉은 주민들의 인명과 재물을 보호하는 마을의 수호신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 때 오봉을 훼손했다가 재앙이 일고 안의지역의 기운이 약해져 다시 오봉을 복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오봉을 복구한 뒤에 다시 부자와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됐고 4봉이 있는 오리지느티나무에서 마을 주민들은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매년 제를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왕이 활을 쏘았던 관덕정(觀德停)이전마을에 위치한 관덕정은 경남궁도협회 등에서 궁도대회가 열리는 곳이다. 본래 안의에서 활을 쏘던 곳은 안의중학교 뒤, 산을 바라보며 연습했던 장소였으나 최근 이전마을로 옮겨졌다. “국궁장비는 활과 화살만 있으면 된다. 궁은 활을 당기는 힘보다 하체의 힘이 좋아야한다. 자세교정과 복식호흡에 좋은 전신운동이다. 집중력을 키우는데도 국궁만한 게 없다.” 관덕정 오장효 사두는 마을 소개에 이어 국궁 애찬론을 설파했다.오 사두는 지도자 자격증을 갖고 있어 신입회원이나 국궁을 배우려는 이들에게 직접 국궁을 가르친다. 국궁은 대한궁도협의의 규정에 따라 입단, 승단의 절차를 거쳐 실력에 맞는 품계가 내려진다. “활터마다 제각기 이름이 있는데 관덕정이라는 이름은 아무 곳에나 붙일 수 없어요. 왕이 활을 쏘았던 전용 활터였거나 최소한 그 활터에서 왕이 활을 쏘았다는 것이 입증돼야 붙일 수 있는 이름”이라며 관덕정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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