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아침 늦게 일어난 아내가 창밖을 보고 소리를 지른다. 얼른 와서 내다보라는데 목소리가 막 떨리고 있다. 뭔가 큰 일이 났나보다 하고 내다보니 수리가 쥐를 잡아 놀고 있다. 아직 살아있는 조그만 쥐를 톡톡 건드리며 도망가게 해놓고선 펄쩍 뛰어 다시 잡아채고 또 다시 놓아주었다가 쫒아가서 앞발로 콱 누르고 한참을 재밌게 놀고 있다. 그러다 쥐가 실신을 한 건지 숨이 넘어갔는지 움직임이 없으니 몇 번 더 톡톡 건드려보다가 갑자기 쥐를 먹기 시작한다. “수리가 쥐를 먹는다~ 아이고~ 저 놈이 저 놈이......” 하며 아내가 비명을 지른다. 얼른 쥐를 못 먹게 하고 사료를 주라고 채근을 하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솔직히 나는 쥐가 무섭다. 나는 짐짓 태연한 척 쥐 잡아먹는 게 고양이 아니냐며 외면을 해버렸다. 사실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는 게 큰일도 아니고 놀랄 일도 아니고 비명을 지를 일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주는 사료만 먹는 줄 알았던 수리가 쥐를 잡아먹는 광경을 목격한 아내는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지난 가을 산책길에서 애처롭게 울던 어린 길냥이 수리를 업어와 봄이 오기까지 집안에서 품에 안고 키웠는데 그 녀석이 징그러운 쥐를 먹는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업어온 길냥이 수리를 아내는 정을 듬뿍 주고 보살폈다. 마당으로 내 보낸 요즘도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수리가 데크에 있는 캣타워에서 자고 있는지 살펴보고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수리가 제자리에 자리를 잡고 누웠는지 확인한다. 수리가 쥐를 잡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전에도 수리가 쥐를 잡아놓은 걸 서너 번 본 적이 있다. 한번은 아침에 잔디 마당에서 죽은 쥐를 밟을 뻔 한 적도 있기 때문에 요즘은 마당에 나가면 혹시나 하고 조심스레 살펴보기도 한다. 지난주엔 수리가 쥐 한 마리와 두더지 한 마리를 세트로 잡아 데크 위에 올려놓은 적이 있다. 나에게 선물이랍시고 준 것이다. 나는 수리가 쥐를 잡기는 하지만 먹지는 않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먹는 걸 보니 나는 내심 (저노미...저노미...쥐를 먹는구나) 싶다. 아내는 충격이 큰 모양이다. 오늘은 수리를 보고 걸핏하면 (쥐도 먹는 녀석이~ 쥐를 다 잡아먹는 녀석이~) 하며 구박을 한다. 평소에 아내가 수리를 귀여워하는 모습을 보면 할머니가 손녀 귀여워하는 것처럼 보였으니 이해는 간다. 아내는 원래 쥐를 먹지 않던 착한 수리가 쥐를 먹게 된 게 가끔 다녀가는 길냥이에게 나쁜 영향을 받아 그리된 거라고 단정한다. 원래 수리는 착한 고양인데 주변에 떠돌아다니는 불량 고양이에게 나쁜 물이 들었다는 것이다. 요즘 수리랑 비슷하게 생긴 (아내가 불량 고양이라고 의심하는) 길냥이 한마리가 가끔 보인다. 한번은 저녁에 수리 밥그릇에서 수리대신 그 길냥이가 허겁지겁 사료를 먹는 걸 본 적이 있다. 착한 수리는 자기 밥을 양보하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수리보다 몸집이 조금 작은 녀석이었는데 여느 길냥이처럼 꼬리가 뭉툭하지 않았고 무늬는 수리랑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비슷해서 혹시 수리랑 동배가 아닐까 싶었다. 나는 그 녀석이 수리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가 슬금슬금 다가갔는데 녀석도 경계를 풀지 않고 슬금슬금 달아났다. 수리는 친구가 필요했던지 쭐레쭐레 따라갔지만 친구대신 밥만 필요한 나쁜 녀석은 뒤도 안돌아보고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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