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문화의식과 가치관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미디어는 천편일률적으로 봉준호의 <기생충>에 대해 찬사일색이고, SNS에서는 봉준호의 ‘봉준호 장르’에 대한 불편함과 10여년 전의 인터뷰 발언으로 비판일색이다. 칸영화제에 큰 관심도 없어보였던 매체들이 ‘황금종려상’ 수상에 고무되어 봉준호를 집중보도하는 가운데 트위터에서는 “올림픽도 아닌데” “찝찝하고 불편한 영화” “이 영화가 왜 15세?” 등, 곱지못한 시선을 드러내고 과거 발언으로 봉준호의 가치관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던 것이다. 개봉 초반의 일이었다.
반면 지난 6월 6일 mbn에서는 <공동경비구역 JSA>를 방영하고 6월 8일에는 채널 CGV에서 <더 포스트>와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연속해서 방영했다. 각각 남북문제, 언론, 정치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현실과 겹치는 영화들이다.
2000년에 개봉하고 2015년에 재개봉했던 <공동경비구역 JSA>는 휴전선을 배경으로 한 역사의 현장에서 현실을 뛰어넘은 휴머니즘이 맞게 되는 비극적인 결말에 마음이 먹먹해지는 영화였다. 남북문제가 맞물려있는 현시점과, 갈수록 첨예해지는 미·중의 틈바구니에 있는 우리나라의 처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았던 영화다.
<더 포스트>는 4명의 미대통령이 감춰온 베트남전쟁의 비밀이 담겨있는 ‘펜타곤 페이퍼’를 뉴욕타임즈가 특종보도한 후의 여파를 그렸다. 정부가 보도금지 명령을 내리고 워싱턴포스트가 4천장에 달하는 이 기밀문서를 입수하자 사주 캐서린이 회사의 명운을 걸고 이를 보도하는 긴박한 과정을 보여준다. 언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고 언론의 현주소를 짚게할 뿐 아니라 어떤 결정이 국익에 유익한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2012년에 개봉했던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는 조정의 정책에 모순을 느낀 가짜 왕 하선이 사대주의에 빠진 대신들에게 “부끄러운줄 알라”고 호통을 치면서 “나는 백성들이(명나라 보다) 백배천배 더 소중하다”고 일갈한다. 관객들은 화면을 응시하며 백성의 안위보다 백성을 권력의 도구로 삼고있는 조정의 대신들에게 분노하며 현실정치를 들여다본다. 정치의 본분과 책임과 사명을 강하게 전하는 압도적인 장면이었다.
이 세편의 영화는 한반도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고, 언론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인지, 정치인들에게 국민이란 어떤 존재이며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질문한다. 좀처럼 매듭을 짓지 못하는 비핵화의 문제, 와중에 격화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의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각축, 지도자들의 복잡한 행로와 어떤 결정들을 상기시킨다.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은 복잡하게 가닥이 얽혀있어 개인이 명확하게 분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영화는 이 가닥을 풀어 명료하게 펼친다. 관객들은 영화가 말하는 바를 곱씹으며 세상을 보는 눈의 지평을 넓히고 사고를 확장한다. 영화는 관객에게 무엇인가. 무엇이든 간에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서 두고두고 생각하는 영화, 삶에 대해, 인간과 사회에 대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이면을 다시 깨우치게 되는 그런 영화가 좋다. 개인적으로 기괴하고 음습하고 악의적인 취미처럼 느껴지는, 편향된 가치관을 조장하는 듯한, 정신적으로 이롭지 않은 공포와 자극을 상업화하는 영화는 관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른 문화의식, 다른 가치관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미디어의 과도한 광고나 부추김에 이끌려 몰려갔다가 후회하거나 충격을 받는 일이 안타깝지만 이도 다양한 사회의 있을 수 있는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언론방송을 포함한 미디어의 자중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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