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신문에 나올 만큼 유명인사가 아닌데... 무슨 이야기를 하죠?” 뒤늦게 접한 민화가 너무 좋아 민화에 푹 빠져 산다는 함양읍 교산리 신소담(41) 씨다. 신 씨는 결혼 후 남편과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며 전형적인 전업 주부로 10여년을 살아왔다. 그러던 그가 민화에 매료돼 취미를 넘어 전문 작가를 꿈꾸며 새로운 삶에 도전하고 있다. “민화를 그리기 전까지는 거의 바깥생활을 하지 않았어요. 남편 출근하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나면 혼자서 하루 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물론 임신 후유증으로 허리가 좋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내성적인데다 낯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남편한테 전화해서 퇴근할 때 사오라고 했으니까 밖에 나갈 일이 거의 없었죠.” 그러던 그가 민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소담 씨도 자신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정도라고 한다. 비전공자인데다 민화를 시작한지 4년 정도 밖에 안돼 부족함이 많지만 대회에 출품도하고 전시회도 참가하는 등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했단다. 함양지역 젊은 작가들의 모임인 그루(G.R.U) 회원으로 활동하며 2017년에 이어 2018년 회원전에 참여했다. 지난해에는 합천팔만대장경미술대전에 3작품을 출품해 한 작품은 특선을, 두 작품은 입선에 당선됐다. 소담 씨는 함양군 서하면 신기마을이 고향이다. 서하초등학교, 서상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아 취업을 선택했다. 취업을 했지만 대학 진학을 포기한 게 아니라 잠시 미루어 둔다는 생각이었다. 때마침 직장과 가까운 성남 가천대에서 산업체 특별전형을 실시해 잠시 접어두었던 대학 진학의 꿈을 이뤘다. 사무직이었던 그는 동일계 특별전형으로 입학했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미술이 아닌 경영학을 전공할 수밖에 없었다. 소담 씨는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많았던 모양이다. 뜨개질도 곧잘 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뜨개에 손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취미생활로 했던 뜨개질이지만 서울시 대표로 뽑혀 전국기능대회에서 은메달을 땄을 만큼 수준급 실력이다. 첫 직장에서 4년을 근무한 그는 전국대회 수상이 계기가 돼 개인디자이너 작업실에서 니트 디자이너로 일하다 초·중·고등학교 동기동창인 동갑네기 남편과 2007년 결혼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려서부터 같이 자라 서로 너무 잘 알기에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있다”면서 “남편은 누구보다 든든한 후원자”라고 했다. 고교 졸업 후 소담 씨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고 친구에서 남편이 된 동창생은 줄곧 함양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바람에 6년여를 이별 아닌 이별의 시간을 보냈다. 결혼 후 안의에서 신접살림을 차려 두 아들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살다 함양읍으로 이사한 것은 4년 전이다.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던 그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5년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물화로 시작했다. 인물화만 그리다 우연찮게 민화를 접했다. 연필로만 그렸던 흑백의 인물화와는 전혀 딴 세상을 만났던 것처럼 빠져들었다. 다양하고 화려한 색깔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그녀는 “이론이나 구도를 몰라도 쉽게 다가갈 수 있고 비전공자도 연습하면 예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며 민화의 장점을 소개한다. 요즘 소담 씨는 전통민화 보다는 표현 방식이 다양한 창작민화를 주로 그리고 있다. 그는 지난 연말부터 매주 한차례 전문작가가 운영하는 산청의 민화공방을 찾아 비전공자로써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민화지도사 자격에도 도전하고 있다. “실력으로 인정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그는 “어린이에서부터 어른까지 많은 사람들이 우리 민화에 대한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면서 “특히 어린이들이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과 뜨개와 접목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 민화의 폭을 넓히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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