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가 꺼리고 어수선하고 분쟁이 끊이지 않는 자리로, 백발성성한 여호수아가 험지를 택하듯 안정된 자리를 두고 떠나시는 의인을 봅니다. 적어도 저에게 당신은 그런 분이십니다. 그 동안의 고민과 갈등, 성도들의 울음보 터진 만류, 이 모든 것보다 사명을 택하신 당신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합니다. 눈물로 당신의 발목을 잡고 떼를 쓰는 것은 사반세기를 함께 지낸 사람들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인사를 하고 나온 자리에 겸손의 꽃 때죽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겸손히 그리고 겸허하게 소명을 따르는 당신을 닮았습니다. 새로운 사역지에서 지나친 열정으로 몸 상하지 않고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 나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장인 장모님 다니시는 처가 동네 교회 목사님께서 25년 동안 시무하시던 교회를 사임하시고 새로운 임지로 옮기셨습니다. 변변한 예배당도 없는 곳에 오셔서 예배당 건물을 다시 짓고, 창고 비슷한 곳에서 생활하시다 생활하기에 조금 편리하게 사택도 다시 짓고 이제 좀 편하게 목회생활을 하실 수 있는데, 어려움을 겪는 교회 이야기를 듣고 자원해서 험지를 택해서 떠나셨습니다. 효도 차원에서 한 번씩 예배당 맨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오곤 하는데 그날따라 목사님 설교 말씀이 심상찮지 않았습니다. 출애굽을 이끈 모세의 고별 설교와도 같고 여호수아의 마지막 설교와도 같았습니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목사님이 떠나시고 난 뒤 그 자리의 소중함을 새삼 느낍니다. 시골교회의 여건상 제대로 사례비를 드리지 못해도,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당신의 사역을 감당해 오시고, 성도(聖徒)를 성도(聖徒)로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바르게 세우려고 기도하시며 권면하시고, 생신을 맞은 어르신들을 모시고 가서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시고,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을 모시고 병원을 다녀오시고, 슬픔을 당할 때는 슬픔을 같이 나누고 행정적인 일처리를 대신 해주시는 등 당신의 삶은 겸손과 섬김 그 자체였습니다. 당신이 가고 난 뒤에서야 당신의 소중함을 더 느끼며,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이며 사명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공자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志于學), 서른에 몸 가짐을 바르게 했으며(而立), 마흔에는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학문 수양에 정진했으며(不惑), 쉰이 되니 하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知天命) 저는 현실에 안주하며 안일하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험지나 다름없는 곳으로 떠나시는 당신을 보며, 저도 교육현장에서 더욱 진실하게 학생들을 대하고 학생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무슨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본분이기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늘 이야기하지만 그 본분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이 꺼리고 피하고 싶은 자리일지라도 당신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그 길을 가겠다는 당신의 사명감에 경의를 표합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사역지에서의 일들이 만만하지 않겠지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과 같이 리더가 바뀌었으니 그 새로움 때문에 돕는 손길들이 모여들게 하시고 일이 순조롭게 해결되기를 기원합니다. 계시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 자리에 계심만으로도 늘 든든했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