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립보행을 시도한 오스탈로피테구스에게 길은 운명이다. 서사적이지만 걷는 길은 우리에게 운명이다. ‘느림의 미학’이라 일컫는 걷기는 현대인에게 버릴 수 없는 화두다. 저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에게는 그 길이 있다. 2018년 10월은 10주년을 맞이한 지리산둘레길의 역사다. 제주 올레길도 뒤지지 않는 역사를 자랑한다. 그 후로 오랫동안 수많은 길이 세상에 나타났다. 그곳에 있어야 할 길 들에 우린 찬사와 갈채를 보냈다. 걷기 열풍의 10주년을 회상하고 우리가 또 걸어야 할, 아니 걸어야만 되는 길은 무엇인지 지면으로 옮기고자한다.아장아장 걷기에 첫 발을 띤 아가부터 지팡이로 하루를 넘기는 어르신까지 걸음의 의미를 되새기며 공감하며 걷는 길 하나는 백 개의 공장 굴뚝 보다 우선함을 찾아보고자 한다.왜 걸어야하는지 아니 걷기 위해 있었던 길, 소통의 길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고자한다. 무엇보다 2020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함양이 간직한 소중한 걷는 길을 세상에 비추고자한다./ 편집자 <글 싣는 순서>1. 지리산둘레실 11년을 돌아보다2. 도보길의 탄생 제주 올레길3. 김광석, 대구의 길로 돌아오다4. 바다위의 정동진, 부채길을 걷다5. 함양엔 없는 안동 선비순례길6. 베트남을 알린 사파길의 매력7. 함양의 미래를 지리산둘레길에서 묻다 함양군 미래 성장 동력을 관광산업과 연관해 걷는 길에서 찾아보고자 기획한 ‘길’ 특집이 1회 ‘지리산둘레길’을 시작으로 6회 베트남 ‘사파 트레킹 길’까지 취재와 보도를 마쳤다. 이번 기획을 통해 관광상품으로 ‘걷는 길’을 조명했고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길’을 통한 브랜드 마케팅 방법도 살펴보았다. 취재를 마무리하며 함양군이 지닌 유형의 자산을 길과 연관 시켜 문화적 자산으로 키우기 위한 고민의 시간을 가져 보기로 했다.함양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구혜령 문화해설사, 이해광 문화기획가, 정해길 문화활동가 등과 함께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번 간담회는 지난 5월 29일 오후 HBN함양방송 스튜디오에서 팟캐스트 ‘지리산메아리’ 녹음과 함께 이뤄졌다. 걷는 길에서 발견한 삶의 길 안전한 마을길이 관광길의 출발점 12년 전 지리산둘레길이 태동할 시기부터 길 조성 과정에 참여했던 이해광 문화기획가는 걷는 길의 정의부터 진단했다.“세상의 모든 길은 인간이 걷기위해 만들어 졌는데 요즘은 별도의 걸을 수 있는 길을 다시 만들고 있습니다. 관광상품을 위해 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조성하고 있지만 결국 해당 지역민들이 걷지 않으면 그 길은 가치가 없는 길입니다. 함양이 내세우는 상림숲길도 아침, 저녁으로 지역민들이 이용하기에 관광상품을 넘어 그 이상의 가치 있다고 봅니다. 결국 인위적으로 길을 조성하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은 지역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걷을 수 있는 길, 한발 더 나가면 안전한 도보길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보다는 차를 우선시하는 교통 정책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함양읍에서 지곡까지 이동할 때 걷기는 가장 위험한 수단입니다. 차도 위주의 길이 안전을 방해하는 것이죠. 집을 나서면 안전하게 걷을 수 있는 길이 마을마다 연결돼야 합니다. 이것이 걷는 길 존재 가치의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관광 사업과 관련해 머무는 체류형 관광을 위해서는 편의성와 속도성을 조절해야합니다. 상림공원 옆에 조성된 대규모의 주차장이 엑스포 행사를 위해서는 필요하겠지만 반대로 상림 일대만 관광하고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상림을 거쳐 함양읍에 머무를 수 있는 길들이 무엇인지 고민해야하는 지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함양에서 만들고 싶은 길은 벛꽃길입니다. 병곡면에서 백전면까지 이어지는 50리 벚꽃길은 대한민국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죠. 그러나 불행하게도 차도 위주로 벚꽃길이 조성돼 함양의 아름다움을 걸으면서 느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 벚꽃길과 사람이 함께 공유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생겼으며 좋겠습니다.”함양길의 재발견을 통한 가치 창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가 확정적인 한국의 서원 9군데 중 하나인 남계서원에서 근무 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구혜령 문화해설사는 지리산둘레길의 문화적 의미를 설명하며 간담회를 이어갔다.“문화해설사로 근무하며 지리산둘레길은 7개 시군 주민들의 삶을 연결해주는 원천의 길이고 생존을 넘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역사의 길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미래세대와 이어주는 길이죠. 이 길 주변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의 생활 방식은 관광자원으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지리산둘레길 완공 11주년을 맞아 이 길을 접근성, 연결성, 수익성 등 측면에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둘레길을 가기 위한 접근성은 어떤가? 함양 구간의 둘레길들은 다른 어떤 길들과 연결이 되어 가치를 빛내는지 또 이 길들이 지역에게 환원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이런 기획도 주간함양에서 시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번 기획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함양만이 간직한 좋은 길들의 홍보가 빠진 점입니다. 서하면의 ‘선비탐방로’는 많은 탐방객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길입니다. 계곡과 천을 따라 걸으면 만나는 정자는 조선시대의 건축문화와 풍류세태를 알 수 있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또한 지곡면 개평한옥마을과 이번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한국의 서원 ‘남계서원’을 잇는 길도 조성하면 멋진 길이 될 것 같습니다. 서원은 교육기관이니 지곡면 유생들이 통학 하던 길로 만들면 어떨까 싶습니다. 특별히 데크를 놓고 새로 건설하지 않더라도 이정표 만이라도 특색있고 세밀하게 갖춘다면 걷기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도시 재생의 해법, 길에서 찾다 함양으로 귀촌한 대구 출신 정해길 문화활동가는 ‘김광석 다시그리기길’을 예로 들며 운을 뗐다.“대구 방천시장은 짧은 거리의 골목길에 벽화와 가수의 삶을 스토리텔링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단순한 거리가 아니라 길에 문화를 입히고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의 발길을 되돌려 놓은 것이죠. 2020함양산삼항노화 엑스포가 열리는 상림과 함양 주민의 삶의 터전이 있는 읍내를 이어주는 이런 길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함양읍은 도시계획에 의해 조성되지 않았기에 아직도 곳곳에 옛 사람들의 흔적과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조화시켜 함양만의 골목길을 만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때마침 함양읍 구도심이 도시재생공모에 선정돼 사업이 진행 중인데 이런 사업에 상림 숲길과 골목길들을 연결해 자연스럽게 상림의 관광객을 구도심으로 안내하는 길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네요. 골목길에는 함양의 옛 주민들이 살아온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해주는 장소로도 활용이 되면 더할 나위 없고요. 이번 도시재생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었던 길들을 꼭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개평마을에서 상림 거쳐 천왕봉까지 함양의 길을 사랑하고 아끼며 걷는 세 명의 의견을 듣고 기획취재 마무리 행사로 함양 상림 산책을 택했다. 오후 6시 길게 뻗힌 석양이 상림 숲에 내려앉을 때 지곡 개평마을을 출발해 상림숲을 거쳐 지리산 천왕봉으로 졸업여행을 왔다는 합천 원경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만났다.저마다 팔을 벌려 상림숲이 주는 싱그러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인솔자인 고미정 교사에게 함양을 졸업여행지로 택한 이유를 물었다.“개평한옥마을에서는 선조들의 삶의 문화를 체험했고 여기 상림에서는 자연이 주는 건강함을 만끽하고 내일 등반할 지리산에서는 인생을 헤쳐 나갈 민족의 기상을 배우라고 이곳 함양을 선택했죠. 가는 곳마다 날 것으로 싱싱하게 살아있는 문화들이 아이들에겐 좋은 교육 현장 그 자체입니다.”늘 스치던 함양 상림은 누군가에겐 의미를 넘어 가치를 탄생 시키는 장소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으며 더 많은 곳이 함양에 있음을 떠 올린다. <연재 끝> 박민국·정세윤 기자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