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땅 루이지애나주 작은 마을 네거리에서 차 옆구리를 들이 받치는 사고를 당했다. 당연히 먼저 진입한 내가 피해자일 터인데도 가해자인 거구의 흑인 청년이 오히려 딱한 듯 나를 쳐다보는 태도가 왠지 꺼림칙했다. 구경나온 동네 주민에게 서툰 영어로 경찰을 불러달라며 허둥대는데 연락을 받고 달려온 딸에 의해 사고는 즉각 수습되었다. “여기 보세요. 아빠가 가는 길에는 STOP표지가 있고 저 차가 가는 방향에는 없잖아요. 아빠 책임 하에 전진하다 사고가 난 것이고 당연히 저 사람은 잘못이 없어요” 그제서야 사람 키 높이의 작은 표지판이 보였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먼저 진입을 했고, 백번 양보해도 먼저 들어 선 차가 있는데 속도는 줄여야지...” “그건 저 사람이 오늘 차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으면 사고가 안 났을 것이라는 말과 같아요. 쌍방과실은 한국에나 있는 거예요. 자기 과실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면되지 허용된 길을 정해진 속도로 운전했을 뿐인 저 사람을 탓해 봐야 소용이 없어요” 0:100 일방과실로 사건은 종결되고 그나마 미국 폴리스가 등장하기 전에 사고가 수습된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작고 남루하기까지 한 ‘STOP’이라는 시그널(signal)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合理(합리)를 단순명쾌하게 설명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양에 온 이듬해에 집을 짓다가 송사가 벌어졌다. 하청업자가 건축업자에게 공사대금을 받지 못하는 딱한 사정이 생겼는데 건축주인 필자를 믿고 공사를 한 것이니 대금을 대신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판사에게 공사도급계약서를 제출하고 “피고가 집을 안 지었으면 대금을 못 받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원고는 주장하고 있다고 나름 멋진 변론을 펼쳤는데, 판사는 판결은 미루고 사건을 ‘조정위원회’에 넘겼다. 마음씨 좋은 동네 유지들로 구성된 위원회는 합의를 종용했다. “어쨌든 피고의 집을 짓다 일어난 일이고 원고는 성실한 사람이다. 경기도 안 좋은데 얼마나 힘들겠는가? 쌍방이 손해를 나누자”는 조정안을 납득하기 어려워 손해를 보아도 좋으니 법대로 해달라고 요청하자 판사가 피곤한 기색을 보였는데 분위기가 좀 그랬다. 우리나라 사법부에 대하여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판사님이나 검사님 앞에 서는 일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50:50 쌍방과실이라는 뻔한 결론을 바꿔 보려던 필자는 여러 날을 허비하고 얼마간의 경제적 손실을 부담하는 것으로 지역정서를 존중하는 군민이 되었다. 함양은 지금 주차장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공영주차장 유료화와 관련 “장사가 안돼 힘든 자영업자들에게 주차비까지 받아야 하느냐”는 말은 힘든 이들을 더 어렵게 해서는 안된다는 군민정서법에 기댄 무책임한 정치적 언어이다. 전통시장 초입에 어수선한 가리개들이 십년이 넘도록 정비되지 않는 것도 “할머니들이 평생 해온 장사 터인데 야박하다”라는 정서를 핑계로 한 행정의 배임이다. 관은 STOP이라는 표지판 보다는 쌍방 간 조정과 합의를 우선하는 것 같다. 변화와 개혁을 이야기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공중질서”와 동등한 쌍방으로 대우하는 한 합리적 해결방안의 도출은 요원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고객 우선, 수익자 부담의 원칙”말고 무슨 답이 있겠는가? “주차장 없이는 어떤 사업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말은 영업에 있어서 고객을 위한 주차공간의 확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시장과 상가를 번영하게 하는 시작은 잘 정비된 도로와 방문객이 편하게 소비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주차환경이다. 관은 설계해서 정성껏 주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면 될 일이다. 금년 5월30일부터 교통사고와 관련된 쌍방과실제도가 대폭 손질된다. 앞으로는 가해자가 명백한 교통사고는 쌍방과실이 아니라 일방과실 즉 100:0으로 처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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