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면 추성마을 (2019년 4월 현재)♧ 마천면 추성리 소재♧ 세대 104가구♧ 인구 183명(남99, 여84)♧ 농가 55가구♧ 주요농산물 : 고사리, 옻, 취나물 ♧ 이장 : 장석윤 “지리산 천왕봉은 우리 동네 산” 자부심 가득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산100번지.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의 주소다. 마천면 추성마을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1개 리(里)가 1개 마을로 이루어진 곳이다. 지리산 제1봉 천왕봉이 추성리에 속해 있으니 지리산은 추성마을의 산이자 함양의 산이라는 게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큰 자부심이다.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곱히는 칠선계곡은 사시사철 자연의 신비를 선사한다. 추성마을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에는 크고 작은 폭포와 소가 연이어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추성마을은 마을 이름에 대한 두 가지의 유래가 전해진다. 옛날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양왕(구형왕)이 머물며 이곳에 성을 쌓아 성의 이름을 ‘추성’이라고 부른데서 시작됐다는 설이다. 가래나무가 무성한 성이라고 해서 가래나무 추(楸)를 썼다. 또 다른 유래는 ‘추성’이라는 길조의 별을 이 마을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해서 마을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오늘은 ‘회치’ 하는 날“마을 주차장에서 큰 구름다리가 보이는데, 다리를 지나서 냇가로 오세요.” 지난 5월 13일 추성마을 장석윤(60) 이장님과의 약속을 잡고 마을에 도착했다. 이 날은 마을의 수호신과 조상들에게 마을의 풍요와 평안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내는 날이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참여해 공동체를 강화하는 화합의 날이기도 하다. 당산제를 지낸 뒤 준비한 술과 음식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마을 잔치로 이어진다. 예전에는 ‘회치’라고 했다. 이장님의 전화 안내에 따라 서복솔숲을 지나 냇가(칠선계곡)로 내려가니 어르신들과 청년 20여명이 큰 바위 앞에 모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둥굴바우라고 불렀다. 마을 사람들은 숱한 폭우에도 떠내려가지 않고 꿋꿋하게 마을을 지켜주는 신성한 바위로 여긴다. 둥굴바우 아래에 사과, 참외, 수박 등 과일과 떡, 돼지머리를 올려놓은 제사상이 차려져 있다. 오전 10시가 되자 바위 앞에 모여 절을 했다. 제를 지내는 동안 모두 진중하고 차분했다. 둥굴둥굴 둥굴바우 ‘원암대’ 100톤은 돼 보이는 크고 둥근 바위에는 오른쪽부터 ‘원암대 (圎岩坮)’라고 새겨져 있다. 둥근 바위라는 뜻이다. 원암대라는 글자 아래는 100여년 전 이 마을에 살았던 조상들과 그 자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특이한 점은 이 바위의 위 쪽에 키가 작은 소나무가 자라 있었다. 바위틈에서 자란 이 노송을 맹갑옥(72) 어르신이 자랑했다. “저기 좀 보세요. 하늘에서 내려준 나무입니다. 아마 수백년은 됐을 걸요”라고 했다. 이날 주민들은 원암대에서 소나무가 솟아 나 있는 풍경을 배경으로 너도나도 기념사진을 찍었다. 당산제는 각 마을별로 지내는 연례 행사였으나 점차 사라지고 있다. 추성마을에서도 잠시 사라진 적이 있었지만 5년 전부터 다시 이 행사를 살려 후손들에게까지 이어가길 바라고 있다. 추성마을 문창권 할아버지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문창권(89)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어야 걸음을 옮길 수 있는 몸이지만 험한 돌길을 건너 이날 당산제에 함께 참석했다. “제일 먼저 출발해도 다른 사람들 보다 항상 뒤”라며 웃었다.문 할아버지의 고향은 추성마을 바로 밑에 있는 의탄마을이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4살 때 부모님께 업혀 이 마을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그 때도 이곳에서 추성마을의 당산제를 지냈는데 문 할아버지는 마을 어른들을 잘 따랐다고 한다. “내가 옛날에 어른들을 따라서 이곳에 오니까 어른들이 이마에 새똥도 안 벗겨진 놈이 놀러 왔다고 했다”면서 “그 때는 당산제가 뭔지도 모르고 구경을 왔는데 ‘너도 왔냐’고 이쁨을 받았다. 이 원암대는 둥굴둥굴 해서 우리 어릴 때는 둥굴바우라 불렀다”고 어렴풋한 기억을 들려주었다. 추성마을의 든든한 봉사자들 문창권 할아버지와는 다른 지팡이를 짚은 청년 이점호(49) 씨. 제사상에 올라갈 과일과 술 등을 박스 째 지게에 지고 왔다가 다시 지고 올라간다. 오늘 하루만큼은 추성마을 머슴이기를 자처했다. 제를 다 지내고 마을로 돌아갈 때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문에 나온다니까 더 많은 짐을 져야 한다”며 무거운 지게를 지고 브이 포즈를 취했다. 또 쓰레기봉투를 집어 든 허경열(51) 청년회장이 뒷정리에 한창이다. 부녀자들은 주민들과 함께 나눠 먹을 음식을 준비했다. 당산제를 지내고 난 후 점심시간이 되자 냇가로 오지 못했던 마을 주민들을 모두 식당으로 불러 국수를 나눠 먹었다. 장석윤 이장은 본인의 식사를 뒤로 하고 마을 사람들을 일일이 챙겼다.장 이장은 “추성마을은 추성리 전체가 하나의 마을로 이루어져 우리나라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마을이다”며 “선거로 이장에 뽑혔으니 우리 마을에서는 대통령하고 맞먹는 것 아니냐”며 이장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장석윤 이장은 중학교까지 마천에서 나와 고등학교 때 서울로 유학을 갔다.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인 서울 소재 유명대학교에 진학해 미술을 전공했다. 또 그림책 사업도 크게 했었다. 그러나 점차 인터넷이 발달되면서 사업이 힘들어져 12년 전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한다. 처음에는 펜션을 운영하다 지금은 칠선계곡 글램핑장도 운영하고 있다. 이장님의 글램핑장 앞으로는 시원한 얼음터 계곡물이 흐른다. 얼음터계곡을 따라가면 최근 조성한 옻칠탐방로가 나온다. 얼음터계곡의 맑은 물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계곡과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서암정사와 벽송사에 이른다. 옻칠탐방로가 조성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추성마을의 새로운 명소로 손색이 없다는 게 장 이장의 설명이다. 마천 옻은 수십 년 전부터 일본에 수출했을 정도로 품질이 우수하기로 유명하다. 일본의 사찰, 신사 등에 마천 옻이 사용됐다고 한다. 그는 “우리 마을과 함양군이 살 길은 지리산이라는 천혜의 자원을 활용한 관광업이다”면서 자연자원이 잘 보존된 추성마을로 많은 관광객이 찾아 주기를 희망했다. 지리산 빨치산의 기억 추성마을은 6.25를 전후해 지리산을 근거지로 삼았던 빨치산의 피해가 심했던 곳이다. 당시 빨치산들은 국군과 경찰을 피해 산 속에 숨어들었으며 주민들로부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강탈했다. 이 때문에 국군은 이곳에서 활동하는 빨치산을 소탕하기 위해 마을을 불 질렀다고 한다.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 인근에서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빨치산 소탕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권정주(73) 어르신은 “여기 사람들은 추성마을에서 태어났어도 6.25때 대부분이 다시 다른 마을로 나갔다가 들어 온 사람들이다”며 “다시 들어오면서 잘 사는 사람들은 새로 집을 지어 살았지만 못 사는 사람들은 고생을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선현규(87) 할아버지도 “산에 불이 나고, 하늘에 비행기가 떠다니고”라며 당시 기억을 말했다. “지금은 길이 이렇게 좋아졌지만 옛날에는 길도 안 좋은 산골짜기에 농사지으면 산돼지가 싹 다 먹고, 또 빨갱이한테 뺏기고, 먹고사는 게 참 힘들었다. 명이 길어서 이렇게 살아 있지. 안 그러면 먹을 게 없어서 벌써 배곯아 죽었어.”6.25 전쟁이 일어 난 후 허허벌판이었던 마천면 추성마을이 지금은 시원한 폭포수가 있는 칠선계곡과 지리산 등으로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칠선계곡 탐방로, 깊고 절경인 계곡들과 천왕봉, 중봉, 하봉, 두류봉 등 1000고지가 넘는 고봉 10여개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또 한국선맥을 이어온 가람 벽송사와 현대불교미술의 최고라 평가 받는 서암정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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