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흐뭇하다’라는 말을 자주 쓴다. 얼마 전에 수필집 ‘흐뭇’을 내고 난 뒤부터 그렇다. 세상살이에 흐뭇한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의도적으로 흐뭇하다며 말과 글을 맺는다.(장미가 피기 시작하니 흐뭇하네요.) (오늘은 비가 흐뭇하게 내렸습니다.) (올해는 큰꽃으아리가 대박났네요. 흐뭇합니다.) (주문한 덤불장미 묘목을 배달받고 흐뭇합니다.)... 이렇게 억지스럽게 흐뭇하다 흐뭇하다고 하는 이유는 은연중에 책 광고를 해보겠다는 잔머리다. 산골농부가 책을 내기는 했는데 누가 이 사실을 알고 책을 살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책을 내었으니 사보시오~하지 못하고 그냥 말끝마다 흐뭇하다며 너스레를 떨어보는 것이다. 기업을 문어발식으로 늘리는 재벌을 보면 사람 욕심 끝이 없구나 싶은데, 오늘 장미 묘목을 일곱 그루 심다보니 재벌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비록 지금은 산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 어릴 적 꿈은 재벌2세가 되는 것이었다. 유감스럽게 부모님의 반대로 꿈을 이루지 못했는데 뒤늦게 장미재벌이 되어 흐뭇하다. 집주변에 장미가 적지 않은데 오늘 색색의 덤불장미 여섯 그루와 노란 목향장미 한 그루 더 심었다. 현재 정원에는 해묵은 덩굴장미가 열 그루 정도 있고 덤불장미도 돌담아래 세 그루나 있다. 장미가 절정인 지금 집이 색색의 장미꽃으로 둘러싸여 향기가 그윽하다. 흐뭇하다. 그리고 모과나무 고목 아래 목향장미도 한 그루 있는데 고목을 감고 올라가 어찌나 잘 자랐는지 모과나무에 백장미가 핀 것처럼 보인다. 흐뭇하다. 재벌이라는 것이 겉보기엔 화려해 보이지만 재벌 나름대로 애로사항은 있다. 특히 장미재벌이 되는 길은 험한 가시밭길이다. 손가락에 팔뚝에 심지어는 얼굴도 가시에 찔려가며 일구어내야 하는 고난의 길이다. 또한 장미 재벌은 허리 아프다. 잡초도 솎아야하고 개똥 거름도 줘야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물도 줘야하고... 어떤 때는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나 싶기도 하지만 재벌은 그냥 되는 게 아닌 것이다. 장미가 절정인 지금은 틈만 나면 장미 앞에서 서성인다. 장미꽃 앞에 서면 달콤한 향기에 취해 내 인생이 장미빛으로 될 것 같다. 흐뭇하다. 요즘 장미의 계절이라 장미축제를 하는 곳이 많다. 장미축제에 가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장미만 있다. 어쩐지 섭섭하다. 아무리 장미축제라지만 장미만 있다니 왠지 2%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 없듯이 장미가 아무리 아름답다지만 장미만 보면 무슨 재민가? 장미와 같이 피는 클레마티스가 덩굴장미 허리를 감고 올라가고 장미 발치엔 작약과 붓꽃이나 목마가렛이 어울려야 장미가 장미인 것이다. 이 세상사람 모두가 재벌이라면 재벌이 재벌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오늘 장미를 심는데 땀 꽤나 흘렸다. 오월인데 벌써 모기도 있어 땀 냄새를 맡은 모기에게 한방 물렸다. 하지만 재벌이 되겠다는 일념에 가려움을 참고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어린 묘목을 심고 물을 주었다. 힘은 들었지만 다 심고 나서 몇 년 뒤 새로 심은 장미들이 자라 꽃을 피울 생각을 하니 ( )하다. ( )안의 두 글자는 차마 또 쓰지 못하고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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