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세상물정 몰랐던 나이에 시집와 반백년을 살았다. 아무 것도 없었는데 열심히 살면서 대궐 같은 집에 논밭도 장만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석꾼이다. 요즘은 틈틈이 부각을 만들어 파는 재미도 쏠쏠하다.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창원마을 마귀인(69)·오상열(81)씨 부부는 지난 겨울 지인의 부탁으로 부각을 만들기 시작해 입소문이 퍼지면서 용돈 버는 재미에 빠졌다. 마 씨는 “독특한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대접을 받기도 한다”며 이름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놨다. 결혼할 때까지도 ‘귀니’라고 불렀고,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주민등록증을 하려고 하니 이름이 ‘귀인’이더라는 것이다. 그는 ‘귀니’라는 이름이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지만 6남매 중 넷째인데 “위로 오빠 셋을 낳고 딸이 태어나다보니 귀하다고 그렇게 부른 것같다”고 짐작했다. 그러면서 “은행 같은 곳에 가면 귀인이 오셔서 우리 은행에 좋은 일이 있겠다”면서 “직원들이 커피 대접도 하고 해서 이름 덕을 본다”고 했다. 그는 전북 남원시 운봉읍이 고향이다. 운봉에서 열여섯 살에 함양군 마천이라는 낯선 곳으로 시집왔다. “중매였겠지. 너무 어릴 때라 어떻게 결혼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 마천면 소재지까지는 버스를 타고 온 것 같은데 거기서부터는 걸어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단다. 그는 “친정어머니가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음식이나 살림살이를 배우지 못했다”며 “어린나이에 멋모르고 결혼해 말 못할 고생도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억척같이 일해 조금씩 살림을 늘려갔다. 누에치기에 담배농사, 닥종이 생산, 가축 사육 등 닥치는 대로 안 해본 일이 없다. 방 두칸짜리 오두막집에서 시어머니를 모시며 억척같이 살았다. 단칸방에서 아들 3형제와 남편, 다섯 식구가 살았다. 십칠팔년 전 지금의 방 3칸짜리 기와집을 짓기 전까지 한동네에서 이사도 3번이나 했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어서 자식을 대학에 보내주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서울과 인천에서 살고 있는 자식들은 부모에 대한 원망보다는 효심이 더 지극한 모양이다. 지리산둘레길 코스인 창원마을에서 부모님이 민박업을 할 수 있도록 집도 지어주었다. 수시로 문안전화도 하고 어머니표 부각 판촉사원 역할도 자청한다. 마 씨는 “대구에서 아는 사람이 지난 겨울 부각을 부탁해 김부각을 만들어 줬더니 맛있다는 소문이 퍼져 계속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본의 아니게 부업이 됐다”고 했다. 이들 부부가 만드는 부각이 아름아름 입소문을 타면서 제법 주문이 들어온다고 한다. 서울, 인천, 대구뿐만 아니라 친정 식구들이 살고 있는 부산과 조카들이 있는 거제까지 마 씨 부부의 부각을 맛 본 이들의 주문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마 씨가 찹쌀풀을 쑤고 소금 간을 해 김에다 찹쌀풀을 입히면 남편 오 씨는 6개짜리 참깨 도장을 찍어 고소함을 더한다. 오 씨에게 “월급은 받느냐”고 하자 “밥 얻어먹으면 됐지”라며 월급을 받지 않아도 만족한다는 듯 크게 웃는다. 찹쌀풀과 깨소금으로 단장을 한 김은 건조기에서 10~12시간 건조과정을 거치면 바삭한 부각이 된다. 건조기에는 한번에 네 톳(400장) 정도를 건조할 수 있는데 네 톳에 일일이 찹쌀풀을 입히고 깨소금 도장을 찍어 건조기에 넣기까지 3시간 가량 작업이 이어진다. 마 씨는 “좋은 재료로 만들면 맛은 없을 수가 없다”며 “특별한 기술 보다는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맛있는 부각을 만드는 비결이다”고 했다. 찹쌀과 참깨, 소금, 김 모두 100% 국내산 최고의 품질만을 사용한다. 김부각 외에도 직접 재배하거나 지리산 자락에서 채취한 머위, 취나물, 가죽순 등 각종 산나물과 깻잎 등으로도 부각을 만든다. 마 씨 부부가 정성들여 만든 짭조름하면서도 바삭한 부각. 밥도둑이 따로 없다. 입맛을 잃기 쉬운 무더운 계절이다. 부각의 바삭함과 짭조름함으로 입맛을 돋구어 봄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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