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편이 족보 이야기를 한다. 종친회에서 족보를 새로 만든다며 서류를 보내라고 했다는데 다소 생소한 문구다. 하긴 한국에 와서 처음 듣는 이야기이니... 조상때부터 현재까지의 같은 성씨의 역사를 담은 것이라는데 거기서도 또 파를 나눈다고 한다. 사육신(조선왕조 충신)의 후손이라며 남편이 가끔 이야기하던 그것이 족보와 연관이 있는 듯 싶다. 지금 살고 있는 한남마을의 지명은 세종왕자 한남군이 이곳 마을로 귀향(유배)을 오고부터 왕자의 이름을 붙여 한남이라고 불리워졌다고 한다. 역사를 되돌려보면 마을의 역사가 무척 오래된 것 같다. 그 당시 한남군과 함께 이곳에 터전을 잡은 남편의 조상이 집성촌을 이뤄 살았다고 하니 남편이 충신의 후손이라는 자부심과 마을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것을 조금은 이해가 된다. TV사극 드라마에서 조선왕조 역사 드라마를 볼 때면 마을 이야기와 역사적 시기가 같은 내용이 나오면 관심이 더 가는 이유도 그래서인 듯 싶다. 네팔에서도 조상에 대한 마음과 친족에 대한 끈끈한 애착은 한국과 비슷하다. 결혼식이 열리거나 초상이 나면 산길을 다섯시간씩 걸어서도 찾아가고 힘든 일도 서로 돕는다. 고향이어서인지는 몰라도 어떤 면에서는 네팔의 정서가 더 정겹고 진솔하게 느껴진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람을 어떤 목적으로 이용하거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는 모습들이 그렇다. 어린 나이로 세상 물정조차 모를 때 한국으로 시집와 벌써 10년이 지났다. 지난 10년 내내 한국에서의 삶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 느낌이다. 빠르고 분명한 목적이 있는 한국인의 삶... 본받고 싶은 부분이었다. 그래서 잘 사는구나 생각하면서. 그런데 행복감도 빠르게 같이 가는 것인지는 조금 의문이 든다. 역사를 되돌려 보면 가난은 사람을 많이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행복감은 풍족과는 또 다른 문제가 있음을 가끔 느낀다. 세상의 빠른 흐름과 변화. 자연스럽게 적응하면 그만일텐데 가끔 네팔 고향을 다녀오면 그동안의 적응이 헛것이 될 때가 많다. 고향이어서 좋고, 정서가 좋고, 풍경이 좋다. 시골 마을의 다락논과 산비탈의 밭에는 소를 이용한 논갈이를 하고 있고, 식사 때가 되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 오른다. 땔감은 도끼를 이용해 나무를 자르고 목재용 나무를 채취할 때도 손톱을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한 환경속의 사람들 품성도 또한 순수하고 온유하다. 빠름 보다는 함께하고 협동하고, 작은 것에서 서로 행복을 나눈다. 한국 생활을 잠시 접고 휴가처럼 떠나는 고향 여행은 어떤 차원에서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을 간 느낌 같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의 빠름이 제어가 되기도 하고 네팔의 느긋함이 공부가 되기도 한다. 고향은 마음 깊은 곳에 기억된 나의 뿌리 같은 존재다. 삶이란 뿌리가 있어야 되고 그 뿌리 위에서 어떤 만족감을 찾게 된다면 그것이 행복일듯 싶다. 그런 의미에서의 한국의 족보도 같은 맥락일 듯 싶다. 그런데 글로 기록하고 의미를 새겨 보더라도 족보에 대한 생활 속의 다가옴은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세상의 빠름이 낳은 또 다른 덤들이 함께하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기록된 의미 보다는 생활 속의 의미가 중요해지고 있는 탓일테고, 삶속의 현실성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을테니까 그런 마음이 드나보다. 족보에 이름을 올리는 분들이 그 역사와 전통 한 핏줄에 대한 마음이 과연 그 의미에 맞게 느껴지고 있는지? 빠른 세상 세태에 휘둘리고는 있지 않은지? 빠른 세상에서 뭔가 잊고 있던 분들은 한번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을 경험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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