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면 복동마을 (2019년 3월 현재)♧ 서상면 중남리 소재♧ 세대 50가구♧ 인구 97명(남52, 여45)♧ 농가 30가구♧ 주요농산물 : 오미자♧ 이장 : 윤상선 호랑이가 지키는 복동마을은 함양의 ‘엑기스’ 복동마을 취재에 나섰던 박민국 PD는 노인회장이 손수 재배해 엑기스를 만들었다는 산머루 즙을 시원하게 들이켜고는 “복동마을이 함양의 엑기스다”라고 감탄했다.마을 초입부터 해발 600m다. 남덕유산 자락에 위치한 복동마을은 고도가 높고 청정해 산머루, 오미자, 포도 등 품질 좋은 특용작물이 생산된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일교차도 커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보다 당도도 높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산된 산머루·오미자 엑기스의 맛과 향 또한 복동마을 사람들의 인정만큼이나 진하다. 주민들은 다른지역 농산물은 복동마을 것과 비교하지 말라고 한다. 그만큼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취재진이 방문한 4월30일 윤상선(61) 이장과 정공립(73) 노인회장이 본지 이영철(58) 서상면지국장과 마을회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6살, 17살 꽃다운 나이에 복동마을로 시집온 김시달(90), 오순애(89), 한수남(82), 한정희(84) 할머니도 취재진을 반겼다. 할머니가 말하는 복동마을 “우리 마을이 복이 많아서 복골 인가, 옛날에는 복골마을로 불렸어. 이제 나이가 먹어서 옛날이야기는 잘 생각이 안 난다. 우리는 16살, 17살 젊은 나이에 남편 꼬라지도 안보고 이 마을에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어. 지금은 시방 즈그들이 좋아서 결혼해도 이혼하고 어디로 가버리고 하는데 나는 얼굴도 안보고 시집와서 이날 평생 늙어 버렸네.” 요즘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과거 어린 나이에 남편 얼굴도 모르고 결혼을 해 아등바등 시골 살이를 겪어온 분들이다.그 중 복동마을 고개 넘어에 있는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에서 시집왔다는 한정희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설 명절이 되면 친정엘 가야하는데 그 때마다 눈이 많이 쌓여서 애를 먹었다. 그 당시는 차도 없고 걸어서 고개를 넘어 다니니까 눈이 아이들 무릎 위 까지 왔었다. 그렇게 2~3시간 걸어서 가면 자식들이 다시는 외갓집에 안 간다고 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복동마을 뒤 육십령을 넘으면 전라북도 장수군이다. 복동마을은 경상남도 북서쪽 끝 마을 중 하나로 전라북도와 경계를 이룬다. 과거 시험을 치러 한양을 가는 사람들은 복동마을을 지나 고개를 넘어야 했다. 그 고개가 육십령 고개이다. 육십령 고개는 고개가 60개여서가 아니라, 고개를 넘는 사람이 60명 이상이 돼야 산적의 습격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넘을 수 있는 고개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그 당시 마을에는 주막터가 있었다고 한다. 주막에서 머물다가 60명이 모이면 고개를 넘어가곤 했다. 한 날은 59명이 고개를 넘다가 산적에게 잡혔는데 일행 중에 임신부가 있어 뱃속에 있는 아이까지 모두 60명이라고 설득해 위기를 넘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고 했다.  “복동마을은 복복(福)자가 아니다” 복동마을 1대 이장이었던 아버지에 이어 두 번이나 이장을 맡고 있는 윤상선 이장이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줬다. “전설을 이야기 하려면 뒷동산에 올라가서 해야 하는데...” 마을 뒷 동산에는 호복설이 있다. 이 동산을 하늘에서 보면 호랑이가 엎드려 있고 범의 머리는 마을을 향하고 있다. 따라서 주민들은 이 호랑이가 마을을 지킨다고 믿는다. 이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고 엎드릴 복(伏)자를 따서 복골마을이라 불리다가 복동마을로 개칭됐다. 윤 이장은 “아마 이 호랑이는 경남에서 가장 큰 호랑이다”라며 “그래서 우리 마을 사람들은 엎드려서 일을 해야(농사를 지어야)만이 잘 사는 동네이다. 우리 주민들은 농사를 열심히 짓는다”고 유머 있는 마을의 유래와 전설을 말했다. 윤상선 이장윤상선 이장은 복동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고향을 지키고 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젊은 패기에 부산으로 나가 직장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3년 뒤 도시 생활은 적성에 맞지 않다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서 파프리카 농사를 15년 정도 지어왔는데 3년 전에 포도농사로 전환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윤 이장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이장을 지냈으며, 올해부터 다시 이장을 맡아 봉사하고 있다. 그는 현재 서상면의 22개 마을 이장을 대표하는 서상면이장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서상초등학교 동창회장으로 모교와 동문들을 위한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마을회관에는 윤상선 이장이 만든 역대 이장 사진액자가 걸려있었다. 마을을 화합으로 이끌어온 역대 이장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다.“학교나 군청 등에 다녀보니 역대 군수 및 교장들의 사진을 액자에 걸어 두었더라. 그래서 우리 마을회관에도 이장님 사진을 걸어 두고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제일 처음에 계시는 분이 복동마을 초대이장이신 저의 부친이다.” 정공립 노인회장 윤 이장과 나이는 띠 동갑이지만 이장 못지 않는 열정으로 마을을 보살피는 정공립(73) 노인회장이 마을 자랑에 한술 더 떴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단합이 참 잘된다. 부녀회, 청년회, 노인회 등 다 잘한다. 남하고 싸움박질 하고 큰소리치는 일은 전혀 없다. 또 마을에 돈만 안 흘려놓으면 쌀가마니가 떨어져 있어도 아무도 안 가져간다. 그게 마을의 최고 자랑이다.” 마을 입구 벽에서 ‘복동마을’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곳을 따라가면 노인회장의 집이 나온다. 이 집터는 마을의 옛 서당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회장님의 아들, 딸 5남매 그리고 막내 동생까지 모두 4년제 대학을 나왔고 공부도 잘했다고 한다.오미자와 산머루, 곶감 농사를 지어 대학을 6명이나 보냈다. 그 당시 이야기를 하면 눈물 없이 말을 못한다고 했다. “나는 초등학교 밖에 못 나와서 공부를 못했다. 그래서 나는 못 배워도 자식만큼은 가르쳐야 겠다는 생각으로 대학까지 다 보냈다. 시골에서 농사지어서 대학을 여섯이나 보냈다고 하면 말 다했지. 사실 하도 지치니까 막내는 대학공부를 안 시키려고 했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보니 빚을 내서라도 공부를 시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 딸들이 다 잘 돼서 지금은 더 잘해준다. 지금은 욕심도 없고 행복하다”며 힘들었던 지난 일들을 떠올렸다. 복동마을 주요코스 솔숲-개바위-범동산-주막터-마을회관 복동마을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가면 작은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정 노인회장이 초등학생 때는 소나무들이 허리까지 왔었다고 했다. 지금은 그 키를 훌쩍 뛰어 넘는다. 어렸을 적 이 숲에서 소나무의 속껍질인 송구(송기)를 벗겨 먹었다가 윤 이장의 부친한테 크게 혼이 났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먹을 게 없고 배가 고프니까 소나무를 꺾어 송구를 벗겨 먹었는데 이장의 아버지가 난리를 쳤었다. 그것을 먹으면 굉장히 달고 맛있는데 그 때 어른들한테는 숲은 건드리면 안 되는 신성한 곳이었다.” 숲에는 언제 세워졌는지 알 수 없는 돌무덤이 쌓여 있고 그 돌들이 마을을 지키는 조상이라 믿었다. 마을 입구에는 개로부터 마을을 지키고 있는 개바위가 있다. 마을에 개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 준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곳을 지나 마을에 들어서면 곳곳에 있는 벽화들이 마을 분위기와 어울려 시골의 산뜻함을 더한다. 중앙에 흐르는 하천을 따라 올라오면 호랑이가 엎드린 모양의 뒷동산이 있는데 옛 복동마을 어린이들의 놀이 동산이었다. 천연잔디가 깔린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미끄럼을 타고, 가지가 아래로 뻗은 소나무에는 그네를 매달아 탔다.“학교 갔다가 이곳에 들렀다가지 않으면 복동마을 사람이 아니다. 옛날에는 이 동산에 학생들이 꽉 차서 놀았다. 그래서 그 때는 잔디가 반질반질 했었다.”언덕 위에 올라서면 복동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마을은 호랑이가 보고 있는 언덕 앞으로 펼쳐지며 뒤쪽으로는 큰 도로가 나 있다. 마을 사람들은 호랑이가 엎드리고 있는 모습의 언덕, 즉 호랑이 몸통에 해당하는 곳에는 집을 짓지 않는다고 한다. 이 호랑이가 마을을 감싸고 있어야 해를 입지 않는다고 한다. “호복형상인 뒷동산에 집을 지으면 바로 망한다. 주민들은 그 의미를 알기 때문에 지금도 이 곳에는 집을 짓지 않는다”고 했다. 다시 마을회관으로 돌아왔을 때는 점심을 알리는 맛있는 냄새가 솔솔 퍼졌다. 올해부터 실시한 경로당 급식도우미 지원사업으로 마을 어르신들이 때 맞춰 하나둘 모여 들었다. 마을섭외부터 취재까지 동행한 이영철 지국장은 회관에 돌아와서 점심 식사를 나르고 어르신들을 챙겼다. 이렇듯 복동마을의 진정한 엑기스는 서로 발 벗고 나서는 주민들이다. 든든한 엑기스들이 모여 소소하지만 행복한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고 있다. 유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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