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한 가지에 연녹색 새싹이 움트던 어느 날 집사님이 찾아오셨다. “목사님 고사리 한 번 꺾어 보시렵니까?” 별생각 없이 “예! 해 보죠”라고 말했다. 4월 초부터 재미 반, 운동 반으로 새벽기도 후 고사리 밭으로 달려가 고사리를 꺾었다. 첫 일주일은 고개를 숙이고 올라오는 고사리가 신기하고, 수확량도 한두 움큼 정도였다. 그러나 날이 점점 따뜻해지면서 고사리들은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기 시작했다. 한 번은 일이 겹쳐 삼 일 만에 밭에 갔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정신없이 고사리를 꺾었다. ‘똑 똑’부러지는 손맛, 점점 무거워지는 자루를 바라보며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몸 여기저기 쑤시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똑 똑’하고 꺾이는 고사리 소리보다, ‘아이고 아이고’하는 곡소리가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픈 허리를 두드리며 먼 산을 바라보는데, 강 건너 밭에서 일하시는 마을 어른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 말 없이 허리를 숙이고 일하시는 두 분의 모습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저분들은 허리도 안 아프신가?”, “어떻게 허리 한 번 펴지 않고 저렇게 일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내 생각의 꼬리는 돌아가신 부모님과 지금도 홀로 시골에서 일하시는 장모님을 지나, 우리를 낳고 기르신 이 땅의 어버이에게 이르렀다.
아들의 머리 숙이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의 아버지는 평생 당신의 머리를 숙이고 살았고, 딸의 허리 숙이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의 어머니는 평생 당신의 허리를 숙이고 사셨다. 이제는 아들딸 다 자라 자기 삶을 살기에 우리 어버이들 고개 들고 허리 펴고 살 때도 되었건만, 지금은 펴고 싶어도 펴지지 않는다. 온몸으로 세상의 무게, 인생의 무게, 가족의 무게를 짊어지고 온 세월이 우리 어버이들의 고개와 허리를 굽게 만들었다.
오늘을 사는 30, 40대 젊은 어버이들은 어떤가? 부모님으로부터 보고 배운 것이 자식 사랑이다. 내 자식 잘 키워 보겠다고 귀하고 귀하게 자란 젊은 어버이들이 세상에서, 직장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허리를 숙이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때로는 답답함도, 억울함도, 분노도, 기쁨도, 즐거움도 삼켜야 하는 이들, 어쩌며 어버이가 된다는 것은 가족을 위해, 자녀들을 위해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숙이는 법을 배워야 하는가 보다.
‘어버이 날’ 유림면 청년회가 중심이 되어 어버이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조촐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청년회의 요청으로 필자는 차량 운행을 하는데, 우리 어버이들께서는 알록달록 예쁜 옷을 차려 입고 마을 입구에 나와 계셨다. 어느 날 보다 예쁘고 멋진 신사 숙녀로 변신하신 어버이들. 그런데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니 대부분 고사리처럼 허리 굽은 멋쟁이 신사 숙녀들이었다. 그렇지만 굽은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가시는 그 모습은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당당하고 멋진 모습이셨다.
세상의 무게, 인생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어버이들을 응원하며...“어버이 은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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