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낌새라는 말이 있다. 낌새의 다양한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짐兆朕, 기미幾微, 징조徵兆∙아주 작은 미세한 기氣의 움직임이나 변화의 상象∙고요한 중에 움직인 것 또는 꿈틀한 것, 이미 부분적으로 갈라진 것, 살짝 일어난 것∙밖으로 표현은 안 됐는데 이미 움직인 것으로 고요한데 뭔가가 꿈틀한 것∙싹이 날 때 땅속에서 씨앗속의 싹이 막 터진 것으로 자라서 땅위로 나온 것은 이미 드러난 것∙내 마음의 움직임이 있는데 표현은 아직 안된 것으로 생각의 싹은 이미 나온 것∙관상학에서 그 사람의 목소리 상태와 말의 내용을 자주 살펴 기미나 징조를 파악해내는 것∙이상한 낌새, 수상쩍은 낌새, 출산할 기미, 작은 기미, 잘 될 징조, 심상치 않은 징조 낌새란 단어 속에는 이렇듯 다양하고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 낌새를 느끼는 곳으로서 외부의 정보를 수용하는 대표적인 곳이 보는 눈(시각정보)과 듣는 귀(청각정보)이니 항상 총명(聰:귀 밝을 총, 明:눈 밝을 명)해야 낌새를 잘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성리학자인 남명 조식의 신명사도神明舍圖에서도 9가지 구멍 중 눈과 귀를 성곽의 이관耳關과 목관目關으로 비유하며 중요시했던 것이다. 그리고 투기投機란 말에서 기機도 무엇이 변화한다는 ‘기미’나 ‘징조’를 일컫는 말로 그 기미나 징조를 남보다 먼저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투기인 것이다. 투자投資와 투기投機는 서로 상반되는 말이 아니고, 투자投資는 자본資本으로 하는 것인 반면 투기投機란 변화의 징조를 먼저 알아차리고 배팅하는 것으로 엄밀히 말해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방법론의 차이일 뿐이다.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낌새를 알아차릴 수 있는 원리를 이미 수천 년 전에 자연 만물이 변화하는 이치에서 밝혀내었다. 바로 눈으로 볼 수 없는 만물의 움직임(변화, 상)을 기氣로 표현하며, 살아있는 모든 만물은 숨을 쉬고 움직이기에 기氣를 발하게 되는데, 이 기氣가 대자연 만물 상호간에 끼치는 영향이 무엇인가를 깊이 탐구하여 실생활에 유익케 하고자 궁구해 놓은 것이 바로 역의 이치易理인 것이다. 여기서 ‘징조’란 단어를 사용한 예를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이야기로 알아보겠다. 선조 2년(1569년), 69세의 퇴계 이황은 선조에게 “태평이 끝까지 가면 반드시 난리가 일어날 징조가 나타난다. 오늘 전쟁이 없다 하여 마음을 놓으면 배는 홀연 풍파를 만나 뒤집히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라고 마지막 진언을 했다. 그리고 선조 7년(1574년), 율곡 이이는 “흰 무지개가 해를 꿰는 것은 전란 징조다. 군정은 무너지고 사방 국경은 무방비인데, 급박한 일을 당하면 장량, 진평, 오기, 한신이라도 거느릴 병졸이 없으니 어찌 홀로 싸우겠는가.”라고 상소문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올렸다. 결국 임진왜란은 퇴계의 진언 23년 뒤, 율곡의 상소 18년 뒤 터졌다. 사주명리학도 결국 하늘에 존재하는 천기天氣의 상象을 10천간天干으로, 땅에 존재하는 지기地氣의 상象을 12지지地支로 정하여, 10천간天干과 12지지地支가 감응하고 순환하며 변화하는 이치를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원리로 밝혀 놓은 학문이다. 이는 사주팔자 속에 감춰진 상象의 생극제화生剋制化를 밝혀 개인의 한평생 속에서 일어날 변화현상을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낸 것이다. 필자도 세상의 이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만능열쇠이며, 크게는 우주변화의 원리 그 자체인 음양오행陰陽五行을 기반으로 하는 동양학 공부를 접하면서 상象에 대한 이치를 조금씩 깨달아 가는 중이다. 지리산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느끼는 것이지만, 자연의 상象을 늘 관찰할 수 있는 시공간에서 동양학의 이치를 알아가다 보면 누구나 수많은 영감과 다가올 징조나 낌새, 조짐을 더욱 잘 느끼는 기질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삶속에서 우리의 눈에 드러난 형形 이면의 상象을 잘 간파하게 됨으로써 항상 때를 알고 미리 대처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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