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철쭉이 피면 비가 옵니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습니다. 흰 철쭉만 피면 비가 옵니다. 지금 비가 잠시 그쳤지만 하늘엔 여전히 구름이 가득합니다. 구름이 해를 가렸는데 어둡지는 않네요. 새로 돋아나는 뽕잎이 일제히 연두 빛을 내뿜고 분홍 철쭉엔 불이 났습니다. 큰꽃으아리 하얀 꽃도 빛을 펼치고 광대수염도 일제히 등을 밝혔습니다.
사월 하순 이어지는 봄비에 사흘 흐리고 하루 맑더니 다시 비가 오락가락 합니다. 스맛폰이 전기 에너지 충전하듯 뽕나무는 태양에너지를 충전해 두었다가 오늘같이 흐린 날 주위를 밝혀줍니다. 나도 충전이 필요해 잠깐 뒷산에 올라 더덕순, 취나물, 두릅을 꺾어 왔습니다. 오늘 저녁에 부침개 만들어 산사춘 한잔 하려합니다. 방전되기 전에요.
오락가락하던 봄비 그친 아침엔 목마가렛 꽃송이 안에서 꿀벌 한 마리 생을 마감했습니다. 꿀을 따다가 기력이 다해 죽은 건지 전날 내린 비에 추워 죽은 건지 알 수 없지만 하얀 꽃송이 안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고 평안하게 누워 있습니다. 나는 스맛폰에서 모차르트가 자신의 마지막을 위해 썼다는 미완성 유작 레퀴엠에 나오는 라크리모사를 찾아 꽃 속에서 영면한 꿀벌에게 들려주었습니다. 한낱 꿀벌의 죽음을 애도하기엔 너무 엄숙한 곡이 아니냐 할 수도 있겠네요. 꿀벌은 길어야 두 달 부지런히 꿀을 모으다 기력이 다하면 날개를 접습니다. 꿀벌이 죽으면 개미장을 치르게 됩니다. 겨울잠을 잘 때는 가을 겨울 봄에 걸쳐 제법 오래 살기도 하지만 잠을 잘 때가 아닌 에너지를 왕성하게 소비할 시기엔 두 달에 못 미쳐 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결코 길지 않은 삶이지만 꿀벌로 태어나 꿀을 따다가 죽는 건 결코 나빠 보이지 않습니다. 시인이 시를 쓰다가, 작곡가가 곡을 쓰다가 죽는 것처럼 꿀벌은 자기가 할 일을 하다가 가는 것입니다.
감나무 밭둑에서 힘들게 한 두 송이 꽃을 피우던 야생화 큰꽃으아리를 캐어와 덩굴장미 아래 심었 두었더니 해를 거듭할수록 풍성하게 꽃을 피워줍니다. 꽃이 절정일 때엔 하얀 폭죽이 터진 거 같습니다. 큰꽃으아리 꽃 잔치가 끝날 무렵엔 장미 첫 송이가 벌어지고 뻐꾸기가 울어대기 시작합니다. 며칠 전 밤 아내가 “벌써 뻐꾸기가 운다~” 하길래 깜짝 놀라 “뭐? 벌써? 장미는 아직인데
~”하고 창밖에 귀를 기울여보니 ㅋㅋ 아내의 착각이었어요. 뻐꾸기가 아니고 소쩍새였답니다.
봄밤의 소쩍새 울음소리는 참으로 애달픕니다. 소월의 시에 나오는 접동접동 아우래비 접동... 접동새라고도 불리는 소쩍새의 애달픈 울음소리 때문에 구박받다 굶어죽은 며느리 전설이 전해 내려오기도 하지요. 곳간 열쇄를 가지고 있는 시어머니가 밥을 할 때마다 식구 수보다 적게 쌀을 내어주어 며느리는 결국 굶어죽고 새가 되어 솥적~솥적~(솥이 작다) 소쩍새가 되었다는......
“연두하세요~” 주변은 온통 연두하라고 광고를 합니다. 앞마당에 뽕나무, 감나무, 이번 비에 꽃이 다 떨어진 모과나무, 금목서, 목련,... 뒷산에 버드나무, 찔레, 산벛나무... 일제히 함성을 지르듯 연두하라고 광고를 합니다. “수리하세요~” 이어지는 봄비에 심심한 고양이 수리는 수리하라고 떼를 씁니다. 지난 가을 산책길에서 업어온 길냥이 수리가 겨울을 따뜻한 거실에서 보내고 봄이 되어 마당으로 거처를 옮겼더니 차라리 겨울이 따뜻했다고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불평을 합니다. “하지만 수리야~사월도 잠깐, 곧 오월이야~ 오월은 너의 계절이 될 거라 장담하니 기대해보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