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오면 나는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어린이날엔 기쁘다가 어버이날에 슬퍼지다가 석가탄신일엔 푸근해지면서 경건해집니다. 어버이날에 왜 슬퍼질까요? 물론 아이들이 달아주는 카네이션 꽃한송이로 한껏 기뻐지지만 이내 마음은 슬퍼집니다. 꽃한송이 달아드릴 부모가 돌아가셔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부모님의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칩니다. 살아계실 때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잘 해드릴 걸 그러지 못한 게 한이 되어 가슴에 멍이 듭니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외웠던 박인노의 시를 소리 내어 읊어봅니다.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니/유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만은/품어 가 반길 이 없을 새 글로 설워하노라육적회귤(陸績懷橘)의 고사성어에는 옛날 중국 오나라 때 육적이라는 사람이 6세 때, 원술의 집에 갔을 때, 자기에게 먹으라고 주는 유자귤 세 개를 슬그머니 품 안에 숨겨 나오다가 발각이 되었어요. 그 까닭을 물었더니, 어머니에게 가져다드리고 싶어서 그랬노라고 대답하여 그 지극한 효성이 모두를 감동시켰다는 이야기도 새겨봅니다. 얼마 전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끔찍한 일이 또 일어났습니다. 이유는 결혼을 반대해서 두 남녀가 부모를 함께 죽였다는 것이에요. 이 사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현대판 고려장이라 해서 부모를 갖다 버리거나 요양원에 방치시키거나 하는 일이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었는데 이제 부모 살해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고 생각됩니다. 공자의 유교사상에서 효는 대효(大孝), 중효(中孝), 소효(小孝)가 있는데 물질적 봉양이 가장 작은 소효,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이 중효, 부모의 이름을 드높여 드리는 것이 대효라고 합니다. 부모님을 물질적으로 편안케 해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편안이 더 우선입니다.자식이 개망나니로 행동하면 동네 정자나무 그늘아래 앉아있던 어른들이 말하지요. “쯔쯧, 저 아이 뉘 집 자식이라? 부모가 어떻게 가르쳤길래 저 모양이누.” 부모는 자식 때문에 동네에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닙니다. 그런데 자식이 무언가에 성공을 해서 이름이 나면 칭찬이 자자합니다. “호, 그래 코 흘리며 다니던 그 아이가 커서 그런 훌륭한 일을 했다며? 가문에 경사로구만. 우리 동네 경사가 아닐 수 없네. 플랜카드도 걸고 동네잔치도 합시다.” 부모님은 그야말로 하늘을 날아오른 것 같습니다. 효란 부모님을 기쁘게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지요. 5월8일은 어버이날입니다. 효(孝)란 자식이(子) 부모(老)를 업고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사람은 다 누구의 부모이고 자식입니다. 나도 부모님의 가슴에 카이네션 꽃한송이 달아드리고 싶습니다. 무덤가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있는지 가봐야 될 것 같습니다. 품어 가 반길 이 없으니 이웃의 어머님을 찾아 인사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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