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생각이 없었는데 신랑될 사람을 보는 순간 마음이 달라졌다. 평소 생각하던 이상형이 내 눈앞에 나타난 거야. 지금도 아까바(아까워)서 힘든 일은 시키기가 싫어.” 함양읍 학사루3길 9-9 퇴근횟집 김삼달(65) 씨는 지금의 남편을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해 여태 콩깍지가 씌어있다고 한다. 1955년 수동면 우명리 구라마을에서 태어난 김 씨는 스물세 살에 작은어머니(숙모)의 중매로 함양읍 뇌산마을 김병주(당시 27세) 씨를 소개 받았다. 그는 “숙모가 몰래 총각을 데리고 와서 마지못해 선을 보게 됐는데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 이상형이었다”며 “결혼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단박에 사라졌고 오히려 저 총각이 혹시 나를 싫어하면 어쩌나 해서 결혼이 성사되기 전까지 마음을 졸였다”고 했다. 그는 결혼 전까지는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시아버지는 화장을 하지 않는 처자라면 당신이 안봐도 된다”라고 하면서 “얼굴도 보지 않고 결혼을 승낙했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결혼 후 뇌산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남편의 건강이 좋지 못해 도시에서 구멍가게를 하며 먹고살 요량으로 결혼 5년 만에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갔다. 구멍가게를 할만한 점포를 계약하고 잠시 고향집을 찾았다. “가게를 하더라도 타향에서 고생하느니 가족들이 있는 고향에서 하라”는 형님 내외의 설득으로 3개월 짧은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함양읍에서 어탕국수집을 시작했다. 37년 전이다. 어탕국수는 어려서부터 친어머니가 끓여 주는 것을 보며 먹어왔고, 여러 가지 밑반찬을 준비하지 않아도 됐기에 특별한 준비 없이 무작정 시작했다. 어머니의 손맛을 물려받아서인지 어탕국수 단일 메뉴였지만 손님들의 발길은 꾸준히 이어졌다. 3년 만에 지금의 퇴근횟집 자리로 확장 이전했다. 퇴근횟집은 그 전부터 퇴근집이라는 이름으로 간단한 식사와 술을 판매하던 곳이다. 이들 부부가 어탕국수집을 이곳으로 옮긴 뒤에도 가게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메뉴를 하나둘 늘려 민물고기 회를 취급하면서 간판만 퇴근횟집으로 바꿨다. 메뉴가 하나 둘 늘어나 지금은 10여 가지나 된다. 37년째 변하지 않는 맛을 자랑하는 어탕국수를 비롯해 메기매운탕과 찜, 향어회, 피리조림, 빙어무침 등 다양한 민물고기 요리로 오랜 단골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추어탕과 고동국도 별미다. 양념이나 재료를 아끼지 않는 것이 퇴근횟집 맛의 비법이라고 한다. 그는 “결혼한 지 어느덧 40년이 넘었지만 이상형과 결혼해서인지 여전히 남편이 좋고 존경스럽다”고 한다. 40년 넘게 콩깍지가 벗겨지지 않은 것도 신통하지만 이름 또한 특이하다. ‘삼달’이라는 이름은 할머니가 지어주셨단다. 대개 이름은 할아버지나 아버지 또는 작명소에서 짓는 것이 일반적인데 할머니가 지어주셨다니 의아했다. 며느리가 딸만 줄줄이 세명을 낳자 할머니가 세 번째 딸이라고 ‘삼딸’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지금은 순우리말 이름으로도 출생신고가 가능하지만 그 때는 한자로 쓸 수 없는 이름은 호적에 올릴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출생신고를 하면서 ‘딸’이 아니 ‘달’로 이름을 신고(등록)해 ‘삼달(三達)’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삼달은 세 번이나 통달했다는 뜻이니까 이보다 좋은 이름이 있겠냐”며 이름을 지어준 할머니가 고맙다고 했다. 한때 원인 모를 병마에 시달렸던 남편도, 놀림감이 되었을 법한 이름도 그의 긍정적인 힘 앞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편은 결혼 후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과 현기증에 시달려 오랫동안 고생했다. 그는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전국에 유명한 병원은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했다. 남편은 자신의 몸이 불편한데도 20년 넘게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자원봉사활동에 앞장서 왔다. 건강을 회복한 요즘은 틈틈이 농사일도 하고 식당일도 돕는다. “남편은 길을 가다가도 굶주린 사람을 보면 식당으로 데려와 따뜻한 밥 한 끼라도 챙겨 먹여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다”고 했다. 그도 그런 남편이 싫지 않다. 퇴근횟집에는 이들 부부의 사랑과 정(情)이 온기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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