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튼튼케 하는 봄바람이 분다. 숲을 흔드는 오후의 바람 소리가 요란하다. 지난여름 부지런히 만들었던 꽃눈이 움직여야 할 때이다. 메마른 나무등걸에서 노랗고 하얀 꽃들이 뿅뿅 솟아난다. 봄의 마법상자가 열린다. 길마가지나무, 산수유, 생강나무 등이다. 이 나무들은 봄의 전령이라 할만하다. 특히 길마가지나무는 2월 초나 중순에 꽃이 피어난다. 상림의 숲에서 가장 먼저 꽃이 피는 나무이다. 버들강아지라 부르는 갯버들보다도 일찍 핀다. 상림에서 꽃을 피울 만큼 자란 길마가지나무는 몇 그루 없다. 동쪽 산책로를 따라 손바닥연못 위쪽에서 볼 수 있다. 길마가지나무의 은은한 꽃향기는 얼어붙은 마음에 봄을 재촉한다. 꽃향기에 이끌려 겨울잠에서 깨어난 꿀벌이 찾아온다. 귀하고 고마운 존재이다. 2008년 동·식물 전문가 5명이 지구상에서 절대로 사라져서는 안 되는 생물 5종을 선정했다. 벌은 그중의 하나이다. 벌은 식물의 꽃가루받이를 담당하고 있다. 식물은 다양한 생물을 키워내는 바탕이다. 인류도 예외는 아니다. 벌은 전 세계 100여 종 식량자원의 70%가 열매 맺도록 도와준다. 전 세계에 2만여 종이 있다. 이들은 지금도 서식지 파괴, 대기오염, 기후변화, 질병으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2011년 우리 토종벌이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사라져 간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제 토종벌은 우리 주변에서 거의 사라지고 없다. 생강나무 꽃은 일주일쯤 피어있다. 산수유는 3주 이상 피어있다. 이 산수유 꽃이 질 즈음 숲의 큰 나무들이 눈에 띄게 움직인다. 숲 아래에서 시작된 봄이 나무에게로 옮겨 붙는다. 숲은 그 자체로 거대한 캔버스가 된다. 파스텔톤 물결이 하루가 다르게 덧칠을 한다. 나무는 풀꽃과 사정이 크게 다르다. 크고 튼튼한 몸집을 가졌기에 느긋한 여유가 있다. 높은 수관이 있어 햇빛을 향한 사투도 덜하다. 봄의 나무는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경우가 많다. 짧은 기간에 서둘러 꽃을 피워 꽃가루받이에 신경을 쓰고 나서야 잎을 키운다. 개서어나무와 참나무 같은 풍매화들이다. 나무의 이런 행동은 자연의 질서이며 어떠한 숙명이다. 4월, 먼저 숲의 주인 격인 개서어나무의 길다란 수꽃차례가 나온다. 붉은 겨울눈의 비늘 틈새로 통통한 노랑 초록의 꼬리가 늘어진다. 뒤를 이어 참나무류의 수꽃차례가 피어난다. 참나무 종류에 따라 다양한 초록빛이 주저리를 이룬다. 이어서 개서어나무와 참나무의 햇잎이 삐죽삐죽 고개를 내민다. 이제 숲은 보드라운 녹색의 물결로 생기를 더한다. 파릇한 봄빛이 절정을 이룬다. 음과 양이 마주 보며 사랑의 손짓을 한다. 바람을 이용하여 암꽃에 다가가는 수꽃가루는 엄청난 양으로 승부를 건다. 풍매화는 모여 살아야 유리하다. 수꽃차례에 붙어있는 꽃밥은 아주 약한 산들바람에도 꽃가루를 날린다. 꽃가루를 멀리 날리기 위해 따뜻하고 건조한 날을 골라 꽃밥을 터뜨린다. 꽃가루는 크기가 작아서 공기 속을 잘 떠다닌다. 새잎이 나오기 전에 꽃가루를 만들어야 한다. 잎이 무성하게 나 있으면 꽃가루가 이동하기 어렵다. 꽃잎도 향기도 중요하지 않다. 곤충을 부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암술머리는 가지 또는 깃털 모양으로 갈라져 있다. 날아다니는 꽃가루를 잘 붙잡을 수 있는 구조이다. 암술머리에서는 화학신호를 내보낸다. 화학신호는 자신과 다른 유전자를 받아들이기 위한 검색장치이다. 규정된 비자가 아니면 입국할 수 없다. 이렇게 철저한 계획과 엄격한 관리 속에서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진다. 생식을 위한 나무의 운영체계가 경이로울 따름이다. 봄숲의 볼거리는 꽃뿐만이 아니다. 저마다의 개성으로 얼굴을 내미는 햇잎에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봄의 정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당단풍나무의 햇잎은 솜털을 잔뜩 뒤집어쓰고 조금씩 펼쳐진다. 마치 토실토실 귀여운 아가 손 같다. 잎과 함께 나오는 붉은 꽃은 아름다운 대비를 이룬다. 사람주나무의 햇잎은 아주 인상적이다. 너무나 강렬해서 한 번 보고 나면 오묘한 파문이 남는다. 짙은 자줏빛이 참새 혓바닥처럼 삐죽하게 나온다. 여린 듯 투명한 햇살에 비치는 보드라운 속살은 빛깔의 신비를 보여준다. 나도밤나무 햇잎은 독특하기로 만만치 않다. 털로 가득 덮여있던 겨울눈이 그대로 부풀어 햇잎이 된다. 중앙맥을 따라 반듯하게 접힌 모습이 참빗 같기도, 정교한 깃털 같기도, 촘촘하게 뻗은 나방의 더듬이 같기도 하다. 봄숲은 강렬하고 신비롭고 경이롭다. 놀랍게 변화하고 빠르게 성장한다. 아주 중요하고 위험한 시기이기도 하다. 생명의 시작이라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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