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몽둥이를 거꾸로 세워도 기호 1번을 받으면 당선된다는 보수성 강한 함양군에서 무소속으로 두 번이나 당선된 정용규 전 함양군수가 지난 3월8일 향년 86세로 별세했다. 정 전 군수는 함양군지방자치사의 상징적인 인물로 함양군의회 초대의장(1991년), 초대 민선 군수(1995년), 함양군수 재선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1934년 백전면 태생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 함양으로 이사해 함양초, 함양중, 부산원예고,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모교인 함양중학교 등에서 후학 양성을 위해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 외사촌 형인 노인환(32년생·전 국회의원)씨가 국회의원 출마(제9대 총선·1973년)를 위해 고향으로 내려와 함양·산청·거창군이 지역구인 이곳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만다. 당시 교편을 잡고 있던 정 군수는 사촌형의 선거를 돕기 위해 교사직을 그만 두고 선거 참모로 활동 했기에 노인환씨의 낙선은 정 군수에게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쳤다. 평소 검소한 삶을 추구한 정 군수는 고향인 백전으로 들어가 화전을 하며 생업을 이어 간다. 화전으로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정 군수를 세상으로 불러낸 이는 부인 홍순명 여사다. 지방자치를 통해 의회가 구성된다고 할 때 누구보다 정 군수의 성품을 알고 있어 “나는 함양을 위해 당신이 꼭 이 일을 했으면 한다”고 권유했다며 그 때를 회상했다. 초대 의회(1991년)가 구성될 땐 군의원은 무보수로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었다. 이후 4년 뒤 지방자치 시작을 알린 민선군수(1995년)에 출마할 당시 국회의원은 노인환씨였다. 노인환씨는 9대 총선에서는 낙선의 고배를 마셨으나 10대 총선에 당선되어 제13대, 제14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정용규 군수는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재선까지 성공한다. 정용규 군수는 1995년부터 2002년까지 7년간 군수를 역임하면서, 농민이 원하는 것은 다해줬다. 평소에도 허례허식을 멀리한 삶처럼 넥타이 보다 점퍼 차림으로 논밭을 다니며 농민들의 손을 잡아 주었던 군수이기에 ‘논두렁 군수’로 불리어졌다. 정 군수의 별명처럼 농업을 중시 여겨 임기 중에 논의 경지정리와 농업의 기반시설에 역점을 두는 정치를 펼쳤다. 또 함양군장회의 초석을 다져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민선 초대군수로서 인사를 비롯한 청렴한 군정을 만드는데 몸소 실천 했다는 것은 당시 공무원 출신들의 일관된 전언이다. 홍순명 여사는 “군수님은 자기 원대로 살다가셨다. 조금 일찍 가신 것은 아쉽지만... 군민을 위한 삶은 천성에 타고 난 것이다. 군수를 지낼 당시도 저렴한 음식을 요구 했다. 정치를 그만 두고 나서도 몸이 불편해서 병원을 가실 때도 걸어 다녔다”며 정 군수를 기억했다. 유품을 정리하며 마지막 눈물로 군수님을 보낸 홍 여사는 “신발장에 군수님 신발을 정리하는데 운동화 뒷 굽이 모두 실로 꿰매져 있었다”고 했다. 정 군수의 성품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욕심 없는 분이었다. 3남매 자식들 결혼 축의금도 받지 않았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정치를 하지 않았는데, 군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냐”며 마지막 가실 때도 유언으로 조의금을 받지 말라고 한 정용규 군수는 군민들의 마음속에 영원한 ‘논두렁 군수’로 남을 것이다. 지난 8일 별세한 정용규 군수는 11일 지곡면 백일리 선영에 안장됐다. 정용규 전 군수는 홍순명 여사와 슬하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최경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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