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림 숲의 중앙에는 사운정이 있다. 동쪽 곁에는 아담한 연못이 있다. 그 사이에 숲속 물도랑이 흐른다. 서쪽 곁에는 약수터를 비롯한 중앙산책로가 이어져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다. 사운정은 누구나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는 휴식 공간이다. 마을 노인들이 시조창을 하거나 장기를 두기도 한다. 가끔 음악인의 악기 운율이 숲속에 울려 퍼지기도 한다. 문화예술회관이 들어서기 전에는 학생들의 백일장, 구연동화 낭송이나 그림전시회, 사진전 등이 열렸다. 예전에는 유림의 전국 규모 시조경창대회가 열렸다. 이곳에는 많은 선비와 유학자들이 다녀갔다. 기둥에 걸린 편액에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 선생의 공덕과 자연경관과 생명의 활력을 노래하는 이 시는 사운정에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천 년 전에 학을 타고 내려온 신선이 있었다는데우거진 숲에 가려 보이지를 않는구나.고을 원들의 칭송이 백리까지 자자하고이 정자에서 보이는 경치가 예나 지금이나 아름답도다.꼬리가 우는 소리 들으며 시를 짓는데힘차게 헤엄치는 붕어를 보니 젊음이 그립구나.고을 사람들이 이런 물고기를 잡아가는 것은 아쉬운 일이로다.이 모든 풍광이 선정의 덕으로 오랫동안 전해지리라. 사운정은 휴식하고 사색하는 실생활의 공간이다. 동시에 신성한 제의의 공간이기도 하다. 사운정(思雲亭)은 천년숲을 일군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숲에서 아주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 공간이다. 사운정에서는 함양군의 주요한 행사인 천령문화제(물레방아축제로 바뀜) 때 천지신명께 알리는 고유제를 지내왔다. 신도비와 함께 선생의 얼을 담은 사운정은 이때 하늘과 이어주는 신성한 제의공간으로 탈바꿈한다. 함양상림에서 일군 선생의 업적과 위상을 얼마나 신성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함양군번영회에서는 군민기원제를 지낸다. 해마다 새해 초에 군민의 태평성대와 무사안일을 기원한다. 천령봉 산정에서 주로 지내는데, 비가 올 때는 사운정에서 기원제를 지낸다고 한다. 또 함양군민체육대회 때에 천령봉에서 성화를 채화하여 불을 밝힌다. 성화를 붙여오는 천령봉(556m)은 사운정으로 맥을 잇는 신성의 원류(原流)가 된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신령스러운 산정이다. 그러면 천령봉은 어떠한 곳인가? 천령군(天嶺郡)은 최치원 선생이 대관림을 만들 때 함양군의 지명이었다. 천령봉이라는 이름이 옛 천령에서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천령봉은 천년이 넘는 동안 함양의 영산으로 시대를 이어왔을 것이다. 그래서 천령봉의 맥을 이어 사운정에서 고유제나 기원제를 지내는 것이다. 천령봉에는 예전에 봉화를 올리던 봉화대가 있었다고 한다. 한때 통신소의 역할을 한 것이다. 천령봉의 산줄기는 오봉산, 백운산, 덕유산을 이어 백두대간으로 연결된다. 천령봉은 오봉산의 한 봉우리로 함양읍 삼산리에 있다. 뇌산마을에서 오를 수 있다. 상림의 위천 강둑에서 보면 남서쪽으로 우뚝 솟아 있다. 천령봉에 오르면 동으로 함양읍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의 기운을 이어놓고 함양읍을 굽어보며 지키고 있는 형상이다. 함양상림은 천년의 세월 동안 마을숲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해왔다. 농경사회에서 마을숲은 생활공간이면서 신앙적인 공간이었다. 마을숲의 형성은 나무에 대한 원시신앙에서 비롯되었다. 우주목으로 나타나는 이 수목신앙은 전 세계 고대 인류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첫 번째 배경은 신성에 대한 고개숙임이다. 두 번째는 공동체의 구심점이다. 세 번째는 미지의 불안을 이기려는 위안심리다. 고대로부터 인간은 신성한 숲을 만들고 하늘에 제의를 올렸다.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순응하고 숭배해왔다. 간절한 염원을 하늘에 전하여 몸과 마음의 안녕을 바라고,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였다. 사회인류학자 프레이저는 고대인의 수목숭배가 토착신앙적 우주관이라고 밝혔다. 이 토착신앙적 우주관은 심리학자 융의 집단무의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융에 따르면 서로 다른 여러 집단이 가지는 같은 기억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전파된다. 그래서 인류의 수목숭배는 전 세계적으로 공유되었을 것으로 본다. 고대인들이 가졌던 우주관으로 볼 때 나무는 하늘과 세상,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가 된다. 이러한 토속신앙적 배경이 천산이라는 산정에서 산맥을 따라 자연스럽게 마을숲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함양상림이라는 마을숲도 이러한 수목신앙의 바탕 위에 서 있다. 사운정에서 지내는 고유제나 기원제도 이러한 토속신앙적 배경을 갖고 있다. 백두대간에서 천령봉으로 산맥의 흐름을 타고 마을숲으로 이어오는 오래된 수목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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