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상림은 신라 때 최치원이 만든 것으로 전해 오는 마을숲이다. 역사적인 기록이 없기 때문에 전해 온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오는 사실적인 이야기이다. 만든 때는 894년~898년 5년 사이로 보고 있다. 898년으로 잡아도 1120여 년이 지났다. 그래서 함양상림을 천년숲이라 부른다. 천년숲은 곧 최치원 선생의 공덕이기도 하다. 이 천년숲에는 당연하게도 선생과 관련된 유래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하나는 금호미 전설이고 하나는 해충 전설이다. 금호미 전설은 선생이 금호미로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든 뒤 나뭇가지 어디엔가 이 호미를 걸어 두었다는 이야기이다. 해충 전설은 선생의 어머니에 대한 효심과 영원불멸의 신선 모티프(motif)를 담고 있다. 이 전설들을 풀어서 차근차근 알아보자. 금호미 전설은 숲을 만든 선생의 권위를 신성하게 하는 영웅적 모티프를 갖고 있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주민의 생활을 보듬어 안고 천년을 상생해 온 마을숲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영원한 공덕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동안 전설이 되었다. 이러한 전설은 주민들의 가슴에 옹심이로 자리 잡았다. 동심어린 아이들은 숲길을 걸을 때 고개를 들어 금호미를 찾았다. 학생들의 소풍 때는 금호미 찾기 행사도 했다. 사운정 곁 개울에는 금호미 다리를 만들었다. 숲 건너편 공원에 금호미 조형물도 만들어 놓았다. 해충 전설에는 어머니에 대한 선생의 깊은 효심이 드러나고 있다. 선생의 어머니가 숲에서 산책하다가 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를 본 선생은 숲으로 달려가 “뱀이나 개미 같은 해충은 모두 없어져라! 그리고 다시는 이 숲에 들지 마라!” 하고 외쳤다. 그 이후로 숲에서 모든 해충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이다. 전설 속 영웅적 인물에 대한 효심을 교훈으로 물려 주고 있다. 이것은 유·불교를 통틀어 굉장히 중요한 공동체 사회의 가치였다. 사실 현대 사회에 더 필요한 교훈이다. 그런데 해충이란 표현에는 유감이 남는다. 생태계의 한 종(種)은 그물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선생이 숲을 만들어 놓고 떠나면서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뒷날에 이 숲에 뱀·개구리·개미가 생기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스스로 나면, 내가 이 세상을 떠난 줄 알아라.” 이 이야기는 선생의 죽음에 대한 전설적인 영원성을 담고 있다. 도가적 신선사상의 한 측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숲을 만든 구체적인 내력에 대한 전설도 있다. 선생이 고을의 풍수해를 막기 위해 지리산과 백운산(함양)에서 여러 종류의 나무를 캐어다가 강둑에 심었다는 설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상림은 선생이 하루아침에 심었고, 하림은 부인이 하루아침에 심었다는 설이다. 상림이 없어지면 선생이 죽은 것이고, 하림이 없어지면 부인이 죽은 것이라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상림과 하림이 나누어진 뒤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 전에는 하나의 숲으로 이어진 대관림이었으니까. 신화와 전설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시대를 이어 구전해 오면서 살이 붙고 가지를 치면서 변화한다. 어떤 주민은 상림에는 요즘도 해충이 없다고 믿고 있다. 또 어떤 주민은 40~50년 전에도 뱀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사실은 상림 숲에 뱀도 개구리도 개미도 다 있다. 그런데도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오랜 전설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려는 어떤 주민들의 심리를 읽을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전설이라는 허구를 만들어 믿으려 했을까? 미지에 대한 불안이나 저항할 수 없는 힘에서 벗어나려는 심리적 위안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설은 상징성을 지닌다. 주민들의 가슴 속에 붙박이 울림으로 자리 잡는다. 금호미 전설과 해충 전설은 선생에 대한 존경과 신성을 강조하는 영웅담으로 볼 수 있다. 이 전설이 허구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심적 위안과 고운 심성에 교훈을 주었다. 마을공동체에 대한 자부심과 애향심을 갖게 하였다. 공동체와 개인을 보호하고 천년숲을 보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선생은 가고 없지만, 그 행적은 천년숲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갈매기’라는 선생의 시가 참 의미심장하다. 자유비행 하는 갈매기를 통해 선생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든다. 가고 옴이 없는 신선의 경지를 이어놓는다. 금호미는 어디에 있는가?물결 따라 이리저리 나부끼다가벼이 털옷 터니 참으로 물 위의 신선일세.자유로이 세상 밖 드나들고거침없이 선계를 오고 가네.맛난 음식 좋은 줄 모르고풍월의 참맛 깊이 사랑한다네.장자의 나비 꿈 생각해 보면내가 그대를 보다가 잠드는 이유를 알 테지.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