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버스 여행기 ‘1250원의 행복’ -17 병곡면 도천마을(2018년 8월 현재)♧ 도천리 소재 ♧ 세대 : 105가구♧ 인구 : 195명(남87, 여108)♧ 농가 : 188가구♧ 주요농산물 : 배, 양파,쌀 등♧ 이장 : 하신효 선조는 존경받고 후손은 존중하는 우루목 사람들 병곡면이긴 하지만 함양읍에서 가까워 자동차로 5분이면 읍내로 나올 수 있는데다 20분마다 읍으로 나가는 버스가 다녀 교통이 편리한 이곳 도천마을. 함양지리산고속의 농어촌버스를 타고 도천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백전, 병곡 방면 버스를 타면 된다.함양상림을 끼고 어린이공원 쪽으로 돌아 병곡면으로 향하다 보면 위천변의 송림을 볼 수 있다. 상림 옆의 또 하나의 작은 숲을 이룬 이곳은 멀리서 봐도 소나무가 울창하게 솟아있다. 송림은 함양읍 죽곡리 일대에 조성된 인공림으로 위천의 범람으로부터 농지를 보호하기 위해 하맹보 선생이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풍수지리상으로 읍에서 도천마을로 들어설 때 마을이 훤히 드러나 보이면 좋지 않다하여 송림을 조성하여 마을경관을 살짝 가렸다는 설도 있다. 상림을 지나 위천변을 따라오면서 창문 밖으로 수십년 생부터 약200년생 정도의 소나무로 가득한 송림을 구경하다 보면 20여분도 채 되지 않아 도천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버스를 하차하면 도천마을을 가리키는 표비석과 마을 안내도가 보인다. 하씨 3효자 정려비각도천마을에 도착하기 직전 유심히 살폈다면 하씨 3효자 정려비각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삼강오륜의 유교적 윤리를 권장하기 위해 충신, 효자, 열녀에 대해서는 정려가 내려져 마을 입구나 대문 앞에 붉은 문을 세워 표창했다. 이 비각은 도천마을 앞 송림숲을 조성한 하맹보의 후손들의 정려비각으로 효자 하맹보, 하원룡, 하필명의 효행을 기렸다. 이렇듯 도천마을에는 효자, 충신, 열녀가 많이 낳다. 진양 하륜대감 자손이 사는 도천마을도천마을은 형국이 소의 목과 흡사하다고 하여 ‘우루목’이라고 하였으나 뒤에는 ‘우동(愚洞)’으로 바꾸어 표기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지금의 도천마을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도천마을은 양암공 하활(河活, 1508-1580)이 진주 단목에서 옮겨와 번성한 곳으로 지금까지 ‘우루목 하가’라는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마을 한복판에는 영조의 명으로 창건된 문충공 하륜의 ‘진산부원군부조묘(하륜부조묘)’가 있다.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국비로 깔끔하게 보수되었다. 해마다 음력 11월 향례를 올리면서 공의 충절을 기린다.용이 승천하는 모습의 소나무 ‘용천송’ 마을 뒤편에는 하늘에서 사방으로 뻗친 가지의 폭이 20미터에 달하는 용천송이 있다. 용이 우물에서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용천송이라고 부른다. 수령 350년 된 용천송은 경상남도 기념물 제213호이다. 소나무가 있는 이곳은 하활의 아들인 하맹보 선생이 터를 잡고 살던 곳이다. 선생의 부인은 매일 정화수를 떠 놓고 남편과 자식을 위해 기도를 올렸는데 아들 황이 어머니의 정성을 기리기 위해 우물 위에 소나무를 심었다. 이 소나무는 세월이 갈수록 용이 승천하는 모습으로 변해갔으며 소나무껍질이 꼭 용의 비늘 형상을 하고 있다. 소나무 뿌리 쪽에 있는 우물은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남도부 하준수 생가남도부로 잘 알려진 하준수의 고향이 도천마을이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하준수는 진주중학 재학시절 일본인 교사를 폭행해 퇴학당한 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중앙대학 법학과에 진학했다. 일제의 학병징집을 거부하고 지리산일대에서 무장투쟁을 벌인 보광당이다. 해방된 후에는 자주적 민족국가 수립을 위해 노력했으나 좌절되어 빨치산으로 활동한다. 부하의 밀고로 대구에서 체포되어 34세의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빨치산이라고는 하나 부유한 삶을 거부하고 민족을 위해 투쟁하며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하준수. 그의 고향 도천마을에는 아직 하준수 생가가 남아있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아 폐가로 방치되어 있다. 하준수의 옛집은 예닐곱 채로 구성되었으나 지금은 허물어지고 남아있는 집채조차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 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될 하준수 생가 복원에 대한 끊임없는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뚜렷한 결실은 없다.선조들이 풍류를 즐기던 정자도천마을에는 풍광이 좋은 곳에서 풍류를 즐기던 선조들의 유산인 정자가 3곳이나 있다. 원계정(遠溪亭), 하한정(夏寒亭), 수옥정(漱玉亭)이 그것이다. 위천 옆 암반 위에 조용히 자리잡은 원계정, 물보다 소나무와 더 가까이에 있는 송림 안 하한정, 후손들로 인해 관리가 잘 되고 있는 수옥정. 특히 송림 안에 있는 하한정은 여름에도 추울 정도로 시원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것으로 하재구 선생이 휴식하고 시를 읊조리며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곡성 영화 촬영지 2016년 관객들을 사로잡은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곡성’(감독 나홍진) 촬영지가 병곡면 도천마을에 있다. 마을회관을 기준으로 오른쪽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곡성의 주인공인 경찰 종구(곽도원)의 집이 나온다. 영화를 봤다면 낯익은 곳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외지인 일본인(쿠니무라 준)이 등장하고 난 후 벌어지는 의문의 연쇄 사건들로 마을이 발칵 뒤집히는 줄거리를 담은 내용이다. 영화의 배경은 전라남도 곡성을 보여주지만 종구가 아내(장소연)·딸 효진(김환희)·장모(허진) 등과 식사를 하는 등 일상의 모습, 무속인 일광이(황정민) 굿을 하며 살을 날리는 장면, 일광이 종구 집 앞에서 귀신 무명(천우희)과 갈등하는 장면, 마지막 효진이가 가족을 살해한 장면 등 대부분이 도천마을의 이곳이 배경이다. 무더운 여름 영화의 오싹함을 느끼고 싶다면 함양읍과도 가까운 도천마을을 찾아가 보길 추천한다. 하말석(79)어르신은 “영화촬영 한다고 마을 사람들이 고생했어. 두 달 정도는 밖에 잘 나가지도 못하고 소리도 크게 못 냈어. 경찰차도 오고 소리도 지르고 난리도 아니였지. 그래서 영화가 개봉되면 마을 사람들한테 영화 한 편 보여 달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네”라며 촬영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예쁨받는 사나이 하신효 이장 어딜 가나 하신효(58) 이장에 대한 어르신들의 칭찬이 빠지지 않는다. 경노모당의 어르신들은 “우리 마을이장이 참 잘해. 이뻐”, “이런 사람이 농촌에 많이 있어야해” 라고 한마디씩 한다. 6남매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5명의 누나를 둔 하 이장은 도천마을에서 태어나 이곳을 떠나 본 적이 없다. 마을에서는 그래도 젊은 나이지만 3번이나 이장을 맡은 베테랑이다. 일을 할 때는 노트에 하나하나 메모를 하고 영수증을 차곡히 모으는 습관부터 똑 부러진 모습을 보이지만 마을 주민들을 대할 때는 누구보다 상냥하고 친근하다. 어르신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그 집안의 이야기도 자신의 일처럼 대화를 나눈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모시고 농사일을 도우며 마을의 봉사를 꾸준히 해 왔다. 젊었을 때 4H활동을 하면서 마을회관 2층에 공부방이 있었는데 학생들을 위한 공부방을 열고 청소도 매일 했다. 따라서 1966년도 당시 26살 때 마을 주민들의 인정을 받고 병곡면 최연소 이장을 맡게 되었다. 아무리 일을 잘 한다고 해도 젊은 나이의 이장으로 인정을 받기는 쉽지 않을 텐데 동네 사람들이 자신을 믿어 주었다고 한다. 일 년 뒤, 27살에는 현재의 아내와 결혼을 해 이장 일을 쉬었고 2003년에 다시 재임을 했다. 이 후 또다시 2015년부터 지금까지 마을이장을 맡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하상민 어르신하상민(78세) 어르신은 함양중11회를 졸업하고 15살에 서울로 가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녔다. 그러다 지난 2016년 봄, 60여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노인대학, 유림회관에 다니며 어린 시절 친구들도 만나고 부인과 함께 오후엔 상림 산책에 나선다. 그의 아내는 꽃가꾸는 걸 좋아하니 마당이 꽃밭이다. 취재진을 위해 마을 소개를 자처하며 구석구석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이니 전문 가이드가 따로 없다. 지식인 하동현 어르신“신문은 사회의 목탁이지.”도천마을 회관을 찾은 취재진에게 던진 한 마디가 눈길을 끌게 했다. 90세가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이슈와 역사 등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하동현(91) 어르신이다. 요즘 정치적 흐름과 사회의 문제점들에 대해 툭툭 던지는 한마디가 예사롭지 않았다. ‘곡학아세(曲學阿世)’라는 말이 있다며 이는 배운 것을 굽혀서 세속에 아부한다는 의미로 “요즘 뉴스만 보면 배운 사람들이 권력에 붙어 세상이 시끄럽다”고 말한다. 이어 옛날 이야기를 부탁하자 임진왜란부터 6.25전쟁까지 역사이야기를 줄줄 막힘없이 말을 했다. 취재진은 어떻게 이렇게 말씀을 잘 하냐고 묻자 주변에서 거창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을 했던 분이라고 한다.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 달라고 하니 자신의 이야기에는 말수를 줄인다. 책을 읽고 뉴스를 매일 같이 본다며 그는 배운 것은 어디 가지 않는다고 한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왔지만 후손들과 나라를 위해 또 앞으로의 걱정 늘 하고 있다. * 이 어르신을 보면서 ‘노인 한 사람이 사라지면 도서관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떠오르며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정세윤·박민국·하회영·유혜진·차혜진 기자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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