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버스 여행기 ‘1250원의 행복’ -16 지곡면 시목마을(2018년 7월 현재)♧ 시목리 소재 ♧ 세대 : 53가구♧ 인구 : 98명(남43, 여55)♧ 농가 : 45가구♧ 주요농산물 : 사과♧ 이장 : 백덕현 재앙을 물리치고 건강을 불러오는 수호신이 살아있는 곳 함양지리산고속의 농어촌버스를 타고 시목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서상이 종점인 지곡방면 버스를 타면 된다. 함양에서 출발할 경우 시목마을 정류장까지 30분 정도 소요되며 버스에서 하차하면 시목마을을 가리키는 큰 표비석이 맞은 편 아래로 보인다. 시목마을은 지곡면과 안의면의 경계를 이루는 마을로 하나의 작은 분지를 이루고 있다. 마을에는 물이 귀해 벼농사를 짓기 힘들었다. 이후 사과나무를 심기 시작하면서 사과가 시목마을을 대표하는 농산물이 됐다. 시목마을은 시묘(侍墓) 마을이라 불렸는데 조선 전기의 문신인 남계 표연말 인물이 부모의 상을 당했을 때 이곳에서 시묘했다고 해서 시묘골이 됐다. ‘시묘’는 부모의 상중에 3년간 무덤 옆에서 막을 짓고 사는 것을 말한다. 또 두동마을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수원 백씨의 집성촌인 시목마을은 수원백씨의 정각 두은정 기문에 ‘두동’으로 기록돼있다. 풍수지리상 서하면 동문산을 마주하고 있어 화재가 자주 일어난다고 했다. 시목마을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마을 앞에 연못을 파고 물 버드나무를 심어 화재를 예방했다는 전설이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크게 우거진 나무 세 그루와 매미울음 소리가 한여름을 알린다. 화재를 막는 마을 수호신 물버드나무 요즘같이 더운 날에는 나무 아래의 그늘이 최고다. 이 마을에는 의좋은 삼형제처럼 세 그루의 나무가 큰 그늘을 만들어 최고의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말하지 않아도 매일같이 이곳에 나와 이야기 꽃을 피운다. 나무 아래 그늘이 마을 사람들 무더위 쉼터이자 만남의 장소이다. 과거 서하면 동문산이 마주보이면 화재가 자주 일어난다는 말처럼 300여 년 전 마을에는 한해에도 몇 번씩 불이 났다. 온 마을이 화재로 인한 피해를 당하고 일부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때 이 마을을 지나가던 스님이 3가지 나무와 연못을 만들면 화재를 막을 수 있다고 전해준다. 따라서 이 자리에 나무를 심고 불을 바로 끌 수 있도록 연못도 만들었다고 한다. 소나무, 물 버드나무, 팽나무 각 다른 3가지 나무가 우거져 있으며 옆으로는 물이 없는 연못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신기하게도 나무를 심은 후로는 마을의 화재가 씻은 듯이 없어졌다고 한다. 이 나무에 대한 또 다른 전설도 존재한다. 화재가 자주 일어나는 것은 위와 같았지만 나무를 심게 된 계기는 마을의 한 노인의 꿈이었다. 마을 전체가 화재가 나 불길로 덮였는데 유독 물 버드나무만 불에 타지 않고 있는 꿈을 꿨다. 이 노인의 꿈을 전해들은 마을 주민들은 신령님의 계시로 여겨 마을에 물버들을 심고 인근에 연못을 팠다고 한다. 그때부터 물버드나무는 시목마을의 재앙을 막는 수호신으로, 여름철이면 더위를 식히는 마을 휴식처로서 그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 송연정이라는 마을의 정자가 작게 있었지만 어르신들은 정자보다 나무 밑이 더 좋다며 나무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인심으로 자라는 시목마을 사과 1970년대 후반 까지 대부분 논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시목마을은 심한 가뭄이 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안의면 일대에 있는 화림동 계곡의 물을 시목마을까지 끌어와 사용하니 물이 풍족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함양군 제22대 여주환 전 군수가 사과나무를 보급했다고 한다. 이후 사과농사를 30년 이상 꾸준히 지어오면서 함양 사과대표 마을을 이루었다. 어르신들은 아직도 여주환 전 군수가 마을에 사과나무를 심게 해 잘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 마을에 나오는 사과는 좋은 품질로 인정받아 서로 가져가려고 해. 여주환 군수가 많이 도와줘서 여주환 군수에 대해 고마움을 나타낸 표지석도 세웠어”라고 말하는 백창현(76) 노인회장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마을의 자랑이 번졌다. 그중 서울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 시목마을로 귀농한 백석기(69)씨가 “보통 귀농한 사람에게 텃세를 부리기 마련이지만 여기 시목마을은 인심이 좋아 농사 노하우나 정보를 자주 공유해 준다”면서 “덕분에 귀농하고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백씨 또한 어르신들에게 ‘사과농사 대선배들’이라 부르며 잘 따르고 서로를 챙기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훈훈했다. 얼마 전에는 삼천포로 마을 주민들과 여행도 다녀왔다고 했다. 백석기씨 옆에 있던 백현(79) 어르신은 “삼천포 바다도 구경하고 케이블카도 탔지. 우리 마을은 다른 마을에 비해 의리가 좋고 단합이 제일 잘 된다”고 말했다. 강순복(79) 어르신은 더 자랑하고픈 나머지 “우리는 건강을 위해서 술 담배도 다 끊었다”고 말하자 건너편에 앉아있던 백옥기(80)어르신은 “그건 아니다. 나는 술을 많이 먹는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또한 시목마을은 1년에 2번 특별한 날이 있다. 명절 전날 마을 주민들 모두가 버스를 타고 가조온천으로 목욕을 하러 간다고 한다. 명절 깨끗한 몸으로 가족들을 맞이하기 위해 백덕현(59) 이장이 5년째 실천하고 있다.  건강의 상징, 마을 표비석 처음 찾는 이도 시목마을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표비석이 세워져 있다. 보통 남성의 키 두 배는 넘어 보이는 돌이 떡하니 서 있어 시목마을에 대한 궁금증을 더한다. 마을 도랑에서 발견된 돌로 2014년 주민들이 표비석으로 세웠다고 한다. 돌이 남근석과 닮아 마을 주민들을 건강하게 지켜준다고 믿는다. 남근석은 남자의 성기 모양을 한 자연 암석이나 암석을 조각하여 세운 것을 말하는데 사람들이 섬기는 민간신앙 중 성기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백덕현(59) 이장은 “어르신들이 사과농사를 몇십 년이나 지어왔는데 아픈 곳이 잘 없다”면서 “이 비석이 우리 마을의 건강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9살 연상연하 김석곤·이태선 부부 주민들 중 가장 오랜 시간을 이 마을에서 지내온 최고령자 김석곤(92)어르신을 만났다. 오늘도 농사일로 바쁜 김석곤 어르신을 백창현 노인회장이 소개했다. “92세의 나이인데도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경운기도 몰고 다니고 아주 정정해. 우리 마을의 또 다른 자랑이다”라고 말한다. 평생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김 노인은 농사와 가축 일을 하며 앞만 보고 달려왔다. 27살에 안의면 황곡리에서 9살 차이 나는 18살 처녀와 결혼해 60여 년을 함께 살았다. 9살 연하인 아내 이태선(81) 어르신은 그런 남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나이가 많아 농사 일도 쉴 법한데 꾸준히 성실하게 일을 한다. 이제는 아프지 않고 건강만을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어린나이에 나이차이가 큰 남편의 집으로 시집와 힘들었던 점은 없었는지 물어보니 시집살이도 없이 편하게 지냈다고 대답했다. “나는 정말 복 받았어. 시집살이도 없이 시어머니가 오히려 잘 챙겨 주셨다”고 했다. 남편이 92세에도 정정한 비결은 마음씨 착한 젊은 아내의 내조와 늘 손을 가만두지 않고 뭐든 하려고 하는 그의 성실함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석곤 어르신은 “건강하게 태어난 것 자체가 장수의 비결이지. 다른 것은 없다”며 마을의 건강을 지키고 있다는 표비석의 대표 산 증인이기도 하다. 황석산 회넘이고개 함양군 서하면에 위치한 황석산에는 정유재란 당시 왜군에게 마지막까지 맞서던 사람들이 성이 무너지자 죽음을 당하고 더욱이 격전 과정에서 돌을 나르며 사력을 다해 도왔던 부녀자들은 왜군들로부터 치욕을 당하느니 절개를 지키기 위해 절벽 아래 바위로 몸을 던져 순절했다. 바로 오늘날 황석산 피바위의 실존하는 유래이다. 왜군은 이러한 황석산 전투가 있기 전 시목마을에서 넘어가는 고개에서 인원이 많아 보이게 속이려고 왔다 갔다 하거나 뱅뱅 돌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렇게 위장전술을 썼다고 하는 고개를 회넘이고개라 부른다.   ‘시목마을 핑클’ 연춘자·박옥의·강석분·권연옥 ‘사과를 먹으면 이뻐진다’는 속설을 사실로 증명하듯이 시목마을 안주인들(어머니)의 외모가 심상치 않다. 취재진을 향해 “더운데 오느라 고생했다”며 마을회관의 한 자리를 내어준, 아리따운 외모만큼이나 따뜻한 마음도 지닌 어르신들.“나는 25살에 서상에서 시집왔어~ 그 당시 여자의 인생은 남편이 좋은 농장을 갖고 있으면 잘 사는 거고 아니면 힘들게 살았지”라고 먼저 운을 뗀 박옥의(75) 어르신은 “그래도 요즘 아저씨(남편)들이 부인 말도 잘 듣고 참 잘 해~”라며 남편 자랑을 놓치지 않는다.“옛날 그 시절 흉년이 들면 고생했지”라는 파란색 셔츠가 잘 어울리는 연춘자(79) 어르신은 “나무도 떼고 모도 심고, 낮엔 반찬 만들고 저녁엔 애들 빵 만들어 먹이고,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 많은 일을 다 했나 몰라”라고 그 힘든 시절을 회상했다.수동면 내백마을에서 21살에 시목마을로 시집 온 강석분(74) 어르신은 “시목마을이 지금은 사과로 유명하지만 옛날엔 소 먹이고, 그 뒤에 누에를 치며 먹고 살았어~ 그러다 사과로 작물을 바꾸면서 좀 더 살만해졌지”라고 말했다.뒤늦게 마을회관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오는 막내 같은 권연옥(65)씨는 서울에서 남편을 따라 시목마을로 귀향했다. “귀향 5년차인데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에서 살려니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형님들이 따뜻하게 맞아주고 챙겨줘 늘 감사 할 뿐이다”고 말했다. 정세윤·박민국·하회영·유혜진·차혜진 기자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