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버스 여행기 ‘1250원의 행복’ ⑮ 지곡면 개평마을(2018년 7월 현재)♧ 개평리 소재 ♧ 세대 100가구♧ 인구 164명(남76, 여88)♧ 농가 80가구♧ 주요농산물 : 자갈한과♧ 이장 : 백상현 자랑하지 않음으로 더 빛나는 선비의 얼이 살아 숨 쉬는 곳 ‘좌안동 우함양’은 예로부터 함양의 자긍심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일두정여창’ 선생을 비롯한 뛰어난 인물들을 배출하고 현재도 서원, 누각, 정자 등 유교문화 관련 역사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는 영남지역 대표 선비마을인 지곡면 개평마을! 개평리는 옛날 덕곡면에 속했던 마을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지곡면에 편입되었다. 예부터 ‘만석꾼’이 두집이나 있을 정도로 부유하고 안정된 마을로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된 마을로도 유명하다.개평마을은 지형이 ‘개(介)’자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개평’이라고 일컬으며 풍수지리설로는 ‘배설’이라고 한다. 배에 구멍을 내면 배가 가라앉는다고 하여 우물을 파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지곡학교가 설립되고 왜인 교장이 이 마을에 들어와 우물을 파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몇 군데 우물의 흔적이 마을에 남아 있다.14세기에 경주김씨와 하동정씨가 먼저 터를 잡았고 15세기에 풍천노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한 개평마을은 현재 대부분 풍천노씨와 하동정씨가 살고 있다.함양지리산고속의 농어촌버스를 타고 개평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지곡면 소재지에 있으니 서상이 종점인 지곡방면 버스를 타면 된다. 함양에서 출발할 경우 지곡정류장(지곡면소재지)까지 15분정도 소요되며 버스에서 하차하면 지곡면사무소가 보이고 맞은편에 바로 개평마을을 가리키는 표비석이 보인다.‘진짜 겸손의 멋’ 백상현 이장 150년이 넘은 크고 작은 고택 60여 채와 옛 양반들의 가풍이 느껴지는 마을길을 선비가 되어 천천히 걷다보니 개평마을회관의 아름다운 정자인 강영정 앞에 어느새 도착했다.개평마을이 고향인 백상현(62) 이장은 이장경력 3년차로 이곳에서 태어나 학교도 다니고 23살에 장가도 가면서 현재 62년째 살고 있다. “지금 ‘재벌’이라 불리는 ‘만석꾼’이 우리 마을에만 2집이나 있었다”고 말하는 백 이장은 “쌀 만석이 아니라 임대를 받은 땅이 만석이었으니 얼마나 부유했는지 상상이 가죠~”라며 수줍게 웃는다.개평마을은 아직도 농업이 주요종목이긴 하지만 ‘자갈 한과’가 특산물로 유명해졌다. 실제로 농사를 짓는 농가도 15세대에 불과하다. 농한기인 11월 초부터 12월 말까지 구정 전에 자갈을 이용해 한과를 생산한다. 요즘에는 유과·수정과·약과·두레곶감도 인기가 많다.백상현 이장은 개평마을이 ‘한옥체험마을’로 유명해지면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역사를 설명하는 등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만큼 바쁘고 힘들지만 이 모든 것들이 한편으론 감사하고 뿌듯하다고 한다. 개평마을 사람들은 이런 이장의 노력을 알기에 그를 신임하고 따른다. 모든 주민들이 한 달에 한번 꼴로 화단을 가꾸는 일을 하는 등 이장의 말이라면 모두가 그를 믿고 앞장선다.‘마을 조타수’ 허영모 노인회장 “안동에 하회마을이 있다면 함양엔 개평한옥마을이 있지요!”라고 매우 자랑스럽게 운을 뗀 허영모(76) 노인회장은 “우리 마을에 대한 자부심을 후손들에게도 계속 이어주고 싶다”며 마을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냈다. 개평마을의 가장 큰 특징으로 마을지형을 첫 번째로 꼽은 허 노인회장은 “개평마을이 함양에서 유일하게 ‘5대’ 지형을 갖고 있는 마을입니다. 소위 ‘5대주 6대양’이라고 말할 때 그 ‘5대’를 갖고 있지요. ‘5대’는 ‘노라대·거라대·오라대·동대·안바대’로 우리 마을주민들의 자부심이자 앞으로도 지켜야할 보물 같은 거지요”라고 강조했다. 개평마을이 풍수지리상 ‘배설-배의 모양’ 형태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유는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토지 아래 암석이 형성되어 있어 물 빠짐이 쉬워 홍수가 나지 않고, 또 물의 흐름이 원활해 가뭄이 들어도 물이 부족하지 않는 까닭이다. 어쩌면 ‘천운’을 가진 마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운’을 150년 동안 잘 간직해오고 그 ‘가치’를 지켜온 건 분명 개평마을 사람들이다. 해군출신인 허 노인회장은 “배는 가운데 물이 새면 침수 하죠~ 그래서 마을 중앙에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물이 없어요. 그 부유했던 옛날 양반집들도 중앙에 우물을 만들지 않고 선조들의 지혜와 역사, 전통을 지키기 위해 새벽 3시에 물을 길러와 사용하곤 했죠” 라고 말했다. ‘20년 장기집권’ 정운상 전 면장 “33살부터 지곡면장을 시작해 54살에 관뒀으니 어언 20년간 일을 한 건가?”라며 “허~허~”하고 웃는 정운상(92) 어르신의 겸손함에 함께 있던 사람들의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개평마을이 고향이고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온 정운상 어르신은 “지곡면민들은 매우 순박하고 소박하다”며 “그 유명한 노참판댁, 일두선생, 대학총장, 공보부 차관, 국회의원 등 훌륭한 자손들이 태어나도 어디 자랑하는 법 없이 서로를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 한다”고 말했다.24살에 유림면에서 만난 부인과 결혼을 한 어르신은 젊은 시절, 지곡면장직을 20여 년간 해오면서 지곡마을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청춘을 다 바쳤다. “지금도 물론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내가 지곡면장으로 일했던 1970년에서 1980년대에는 박정희 대통령 정권 시절이어서 더욱 힘든 부분이 많았다”며 “그래도 큰 일 없이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하는 정운상 어르신의 모습엔 아직도 지곡면장으로서 두터운 신임과 책임감이 엿보이는 것만 같다. ‘한성(현 서울) 이남 집터로는 최고의 명당’에 자리 잡은 ‘강영정’. 개평마을회관의 정자이름이다. ‘건강할 강’에 ‘편안할 영’이란 이름을 딴 ‘강영정’ 정자 앞으로 마안산의 기상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인기방송 촬영지 폭염이 기승을 부린 날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자랑에 열정적인 백상현 이장은 우리를 ‘조선시대 타임머신’이라도 태우 듯, 옛 조선으로 안내했다. 아름다운 돌담길을 따라 눈앞에 펼쳐진 고택들은 드라마 촬영지로써 ‘1987년 KBS 토지, 2003년 MBC 다모, 2017년 KBS 1박2일 그리고 올해 TVN 미스터 선샤인’까지 드라마와 영화 등 한옥관련 촬영지로 연일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특히 지난 2017년에는 김국진·김종민·윤정수가 출연했던 ‘시골빵집’ 프로그램의 인기로 많은 관광객들이 개평마을을 찾았다. 한해 평균 10만 명의 관광객이 개평마을을 방문해 다양한 한옥체험을 즐긴다.일두 정여창 고택조선 성종 때의 대학자인 ‘일두 정여창’ 고택으로 1984년 1월 10일 국가민속문화재 제 186호로 지정됐다. 지금의 건물은 정여창의 사후인 1570년대에 후손들이 중건한 것이다. 3천여 평의 대지에 12동의 건물이 배치된 남도지방의 대표적인 양반 고택으로 대문에 문패가 4개나 걸려있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ㄱ’자형이고 납도리 3량 가의 홑처마 맞배지붕집이다. 가늘고 긴 석주(石柱)를 초석으로 삼았으며 ‘문헌세가(文獻世家)’·‘충효절의(忠孝節義)’·‘백세청풍(白世淸風)’ 등의 편액이 걸려 있다. 사랑채 끝 담장 아래에 석가산(石假山)의 원치(園治)를 조성하여 안에서 바라보며 즐길 수 있도록 했다. ‘ㅡ’자형의 큼직한 안채는 정면 7칸, 측면 1.5칸으로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고 뒤편에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가묘(家廟)가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가묘 동쪽에 정면 2칸, 측면 1칸의 광채가 있다. 노참판댁 고가 - 경남문화재자료 제360호조선말기 우리나라 바둑계의 일인자였던 사초 노근영(1875~1944)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선생의 호가 사초여서 사람들은 노사초라고 불렀으며 성품은 온화하면서도 검소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아낌없이 재산을 내주었다고 한다. 선생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일본 등지로 다니면서 가다니 8단과 혼다슈고 초단에게 백을 들고 만방으로 이기는 등 프로기사가 없던 시절에 조선 바둑계의 국수로 불려졌다. 특히 며느리의 산후조리를 위해 보약을 지으러 갔다가 바둑친구를 만나 약을 손에 든 채 서울로 바둑 유랑을 가는 등 많은 일화를 남긴 바둑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이곳은 또한 선생의 증조부가 만년에 낙향해 기거한 곳으로서 공은 벼슬이 호조참판에 이르렀으나 매우 청렴했다고 한다. 옛날에 심한 가뭄으로 주민들이 어려워지자 임금께 조세감면 상소를 올리자 주민들은 그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사랑채를 지어 주기도 했다. 정세윤·박민국·하회영·유혜진·차혜진 기자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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